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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화원 인문학반, 화순 조광조, 정율성, 주자묘 등 답사

광주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 마을인문학반은 11월 4일 조광조와 양팽손의 지란지교(芝蘭之交), 정율성의 능주초등학교, 주자의 증손자인 주잠의 묘가 있는 주자묘 등 화순 능주지역 문화답사를 가졌다.

우리 지역의 정신과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지역 문화답사를 갖고 있는 마을인문학반은 먼저 조광조 유배지가 있는 현장을 찾았다.


유배지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조광조의 출생과 성장, 김굉필로부터의 수학, 양팽손과의 지란지교, 올곧은 상소로 인해 훈구파로부터 배척당하고 기묘사화를 당해 귀양왔다가 사약을 받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시 공무원 출신의 해설사는 담담하게 설명했고 문화답사단은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정암 조광조(1482~1519)17세 되던 해에, 어천(魚川,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 찰방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평안도 희천에 귀양 와 있던 한훤 김굉필(1454~1504)에게서 글을 배워 사림파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1515(중종 10) 가을에 알성시에 급제한 조광조는 여러 자리를 거쳐 홍문관에서 부제학을 역임하면서는 왕 앞에 나아가 학문을 강의하는 등 중종 13(1518)에는 대사헌이 되었다.

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하는 유신의 정치를 펴나갔다. 중종이 대의명분과 오륜을 존중하는 성리학을 장려하자 조광조는 이러한 새 기운 속에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광조는 왕에게 성현을 본받아 수양에 힘쓸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기존 훈구 세력의 부패와 비리를 공격했다. 훈구세력의 반발에 불을 당긴 것은 훈적삭제(勳籍削除) 사건이었다.

조광조는 부당하게 공신으로 책정된 사람이 있으니 재심사하여 자격 없는 사람들은 빼 버리자고 왕에게 건의했고, 결국 103명 가운데 78명의 훈적이 삭제되었다.

이 사건으로 훈구파의 불만은 극도에 다다랐다. 대궐 안의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 주초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를 꿀물로 써 놓아 벌레가 갉아먹게 한 후에 왕에게 보이도록 해 역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모함했다.

이른바 기묘사화가 터졌다.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는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일단 능주로 유배되었던 조광조는 한 달 후에 사약을 받았다. 올해가 바로 조광조 사후 500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은 답사였다.

지금 능주면 남정리의 조광조 적려유허지에는 정암 조선생 적려 유허 추모비와 영정각, 3칸 초가, 강당이 있다. 답사단이 방문한 날에는 초가지붕 갈이가 있었다. 겨울나기를 위한 새옷을 입는 듯 했다.

이어 지란지교의 막역한 사이로 조광조가 사약을 받자 그의 무덤에 비석을 새겨준 양팽손과 함께 배향되고 있는 죽수서원을 들렸다.

1568(선조 1)에 조광조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이듬해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와 함께 조정에서는 조광조를 향사할 서원을 건립했다.

1630년 유림들과 조정의 김장생 등이 뜻을 모아 양팽손도 추배하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려 겨우 단을 마련하여 제향하여 왔다.

1971년 제주양씨 후손들이 도곡면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복원하였다. 1983년 다시 본래의 위치인 모산리에 복원을 추진, 월곡리의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9년에 동재를 지었다.

성리학의 최고봉인 주희(1130~1200), 즉 주자의 증손자인 주잠(1194~1260)이 송나라가 망하자 원나라로부터 피신하여 고려로 들어왔다. 원나라에서 고려에 주잠을 압송을 요구하는 것을 알고 화순 능주까지 피신해 살았다.

처음에는 신안 주씨(新安朱氏) 문중에서 1905년에 영모당(永慕堂)으로 창건하였다가 1978년에 확장하였고 최근에는 새로운 시설을 갖추기 위한 대규모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화순 주자묘를 안내하면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주자의 후손의 무덤이 있고 주자묘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사당 안에는 주자의 증손이자 신안 주씨의 시조인 청계공 주잠을 포함하여 모두 6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다음에 찾아올 때면 더욱 커진 주자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마도 중국관광객을 겨냥한 지방자치단체의 전략이 곁들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잠의 묘는 주자묘 바로 왼편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따라 햇볕이 따사롭게 비쳤다.

마지막으로 역시 중국에서 혁명음악가로 음악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정율성이 능주에서 2학년까지 다닌 인연으로 유명해진 능주초등학교를 찾았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교실을 재현하고 정율성의 어린 시절을 인형으로 재현한 모습, 한 켠에 당시의 교과서들이 있는 등 오래된 옛 이야기가 스토리텔링처럼 들려오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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