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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82건)

고경형
고경형(高敬兄), 고경명의 동생이다. 湖節1下-173-2, 光州, 壬辰, 高從厚 同殉《호남절의록》(1799)
김덕보
김덕보(金德普), 湖節4下-127-1, 光州, 丁卯, 高循厚同倡-《호남절의록》(1799)김덕보(金德普)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巖). 아버지는 김붕섭(金鵬燮)이며, 어머니는 남평박씨(南平朴氏)로 직장 박계종(朴繼宗)의 딸이다. 형이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다. 광주(光州) 석저촌(石底村), 지금의 충
칠계 김언거(1503~1584)
김언거(金彦琚, 1503∼1584)의 본관은 광산,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이다.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광주에서 태어났다.김언거는 1525(중종20년)년 사마시司馬試, 153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듬해 예조좌랑 및 사간원 정언에 제수되었다. 1542년에는 낭관을 지내다가 체직되었고, 1545년에는 금산군수에서 사헌부
고봉 기대승(1527~1572)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 1527~1572)은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스물여덟에 「주자대전」 100여 권을 탐독한 후 네 권의 「주자문록」을 남겼다. 경연에서 선조에게 전한 말을 묶은 「논사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본관은 행주.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아버지는 몰재 기진
광유재
남구 행안동 구남마을 광유재(光裕齋) 뒤에는 함양윤씨 입향조 윤지화 묘가 있다. 남촌(南村) 윤지화(尹之和 1476-1558)는 연산군 때 중종반정이후 이곳에서 난을 피해 머물렀다.광유재는 광주광역시 남구 효덕로 224-7(행암동 9번지) 빛고을건강타운 앞 효덕로(孝德路) 북동편 신현산(新峴山) 아래 위치해 있다. 함
화암 송타宋柁(1567~1597)
송타(宋柁, 1567~1597)의 자는 시정(時正)이고, 호는 화암(禾庵)이다. 본관은 홍주(洪州)이다. 아들 송수(宋燧)가 있다. 조부는 송정황(宋庭篁, 1532~1557)이고, 부친은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 1549∼1601)이며 처부는 성주김씨(星州金氏) 김의백(金義伯)이다. 매형은 석주 권필(權韠)이다.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고용후(高用厚)
고용후(高用厚, 1577-1648)의 자는 선행(善行), 호는 청사(晴沙), 본관은 장흥(제주)이다. 제봉 충렬공 고경명( 高敬命)의 여섯째 아들이다. 고조는 현감을 지낸 고자검, 증조는 기묘명현인 하천 고운(高雲), 조부는 하헌 고맹영(高孟英)이다. 어머니는 울산 김씨 부제학 김백균(金百鈞)의 딸이다.1577년 선조 10년 (정
청사영당(晴沙影堂)
남구 원산동근방 마을에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 1577-1648)의 영정을 모시는 청사영당(晴沙影堂)이 있었다. 1868년에 훼철되었다. 철폐 이후에 고용후의 영정은 포충사 동재로 옮겼다.고용후는 자가 선행(善行), 호는 청사(晴沙) , 본관은 장흥(제주)이니 제봉 충렬공 고경명의 여섯째 아들이다. 고조는 현감을 지낸 고
환벽당 環碧堂
북구 환벽당길 10 (충효동)   환벽당은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 정자이다.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동쪽 30리에 있다.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물이 흐르며 계곡 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
풍암정1 -김덕보
북구 풍암제길 117 (금곡동)   조선 선조와 인조 때 활동했던 집의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1571~1621)가 지은 정자이다. 풍암정은 무등산 분청사기 박물관에서 원효계곡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계곡 건너편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광주읍지》(1879, 1924)에 따르면 주의 동쪽 20리에 있다.‘풍암’이라는 이
초연루(超然樓)
고경명의 후손으로 전남 담양군 창평면 정곡리에 살고 있던 고재붕(高在鵬, 1869~1936)의 유서석기(遊瑞石記)에 초연루(超然樓)가 등장한다.유서석기는 그의 나이 27세 때인 1895년 4월 여름에 정자앙(子仰 鄭海隣)과 함께 서석산을 오른 뒤에 슨 글이다. 이 글에는 원효암에서 김안중(金晏仲), 고경좌(高敬佐) · 김선명(金
증심사 취백루 翠栢樓
동구 증심사길 177 (운림동)   증심사 취백루는 일종의 범종을 설치해 놓은 건물이었다. 범종을 설치한 건물은 흔히 단층일 때는 범종각이라 하고 2층 누각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는 범종루라고 한다. 증심사의 범종루는 특별히 시적 운치가 있는 취백루라 했다.취백루는 정유재란 당시 증심사 건물이 모두 불타버린
읍향정 挹香亭
남구 압촌길 78 (압촌동)   남구 제봉산 하록에 있다. 이 정자는 고경명의 종손인 남주 고영문(1841~ ?)이 피서 겸 휴식처로 그의 집 앞에 지은 2칸 와가의 조그마한 건물이다. 비록 그의 이름은 정자라 하지만 그의 규모로 볼 때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촌각에 불과하다. 의병장 고경명의 옛터에 후손들이 1917
양과정 良苽亭 양과동정
남구 이장동 266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양과정이 주의 서남쪽 20리에 있다. 일명 간원대諫院臺이다. 이 지역 출신 인물들이 간관諫官으로 많이 진출하여 국사를 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고경명의 별장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600년대 중반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액 '良苽洞亭'이라는
애일당(愛日堂)
광산구 광곡길 73 (광산동) 애일당은 한국적 살롱문화 溪山風流의 산실로 일컫는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광곡(廣谷 너브실)마을에 고봉의 13대 후손 기세훈(奇世勳, 1914~2015)이 지낸 애일당(愛日堂)이 자리하고 있다.너브실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고봉의 13대 후손 기세훈(奇世勳, 1914∼현재)의 고택이다. 애일당(
수진당 守眞堂
광산구 신창동   풍영정(風詠亭)의 주인 칠계 김언거의 손자 김치원金致謜(1562~?)은 수진당을 경영하며 풍영정도 관리했다. 김치원의 자는 화제(和濟), 호는 수진당이다.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권율 장군을 도와 이치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이곳에서는 임련林堜, 장운익
송설정 松雪亭
남구 압촌동 고경명의 조부인 송설松雪 고중영高仲英(1506~ ?)은 남구 압촌동 출신으로 하천 고운의 아들이다.귀양에서 풀려나 조정에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면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중종 때의 절신(節臣)인 고중영은 명종비 인순왕후심씨仁順王后沈氏의 외삼촌인 정승 이량李梁이
부용정 芙蓉亭
남구 고싸움로 2(칠석동)   부용정은 감사 부용 김문발(金文發, 1359~1418)이 1411년에 별장으로 세운 정자이다.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서남쪽 30리에 있다. ‘부용’은 송宋의 주돈이周敦離가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을 꽃 중의 군자라고 칭송하였던 것에서 따온 것이다. 정내에는 창암 이삼만의 '芙蓉
백운정 白雲亭
광산구 두정동 산82《광주읍지》(1879, 1924)에 주의 서북쪽 40리에 있으며 고봉 기대승(1527~1572)이 지었다고 했다. 기대승이 출가해 처음으로 생활한 곳으로 옛 소고용리召古龍里에 속해 있었다. 고봉의 8대손 종손 연기 현감 기상익 이후 1760년께 퇴락되었다. 광산구 임곡 본량동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경명의
무등산석실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96   나옹선사(1320~1376)는 1340년 허망하게 요절한 친구의 죽음에 무상함을 느끼고 그길로 공덕산 묘적암에서 요연선사에게 출가한다. 1344년에는 회암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원나라에 가서 연경의 법원사에 머물며 4년여를 지공에게 수학하였다구월산ㆍ용문산ㆍ원적산ㆍ금강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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