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경(柳思敬, 1556~?), 湖節1上-070-1, 光州, 壬辰, 高敬命同倡 -《호남절의록》(1799)류사경은 문화류씨이며 자는 덕신德新, 호는 육유당이다. 우의정을 지낸 류량의 8대손, 유혜의 아들이며 광주 이장(光州 泥場), 현 남구 양과동에서 자랐다. 문장에 뛰어났고 절개(節槪)가 있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회재 박
김치원(金致謜 1562~?)의 자는 화제(和濟), 호는 수진당(守眞堂)이다.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권율장군을 도와 이치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湖節3上-021-3, 光州, 壬辰, 權慄參佐 -《호남절의록》(1799)칠계(漆溪) 김언거(金彦琚, 1503~1584)의 손자 김치원(金致謜 1562~?)은 ‘수진
김응복(金應福)의 자(字)는 경서(慶瑞), 호는 서봉(瑞峰). 문경공(文敬公) 탁(琢)의 후손이며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김세천(金世天)의 둘째 아들이다.선조 때 무과급제하여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고종후(高從厚)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조부 송암공(松庵公)과 함께
김언복(金彦福)의 자는 복우(福宇). 본관은 김해(金海). 고려조 때 판도판서(版圖判書) 관(管)의 후예이며, 문민공(文愍公)
탁영(濯纓) 일손(馹孫)의 증손이다. 어려서부터 기국(氣局)이 크고 영매하며 힘이 또한 장사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 자질들 수십 명을 이끌고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의병진에 달
김억룡(金億龍, 1561~1592)의 자는 내무(內武), 호는 송암(松岩)이다. 절효공 후손이며 공신 모재 김사모(金嗣牟)의 차남이다.1589년(선조22) 무과 급제하여 용분위부사정(龍賁衛副司正)이 되었다. 정유재란때 형 억명, 아우 억호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원성으로 가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영광 송촌사(松村祠
김선지(金銑之, 1570~1597), 湖節3下-182-2, 光州, 壬辰, 熊峙殉節-《호남절의록》(1799)김선지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여휘(汝輝), 호는 제남(濟南)이며 참봉 김하(金河)의 후손, 생원 김안방(金安邦)의 아들이다. 지혜와 용맹이 남달리 뛰어나 선조 21년 戊子에 무과에 합격했다.임진왜란(壬辰倭亂)에 선전관(宣傳官)
김성원(金成遠, 1525~1597), 湖節2下-162-1, 光州, 壬辰, 一道擧義-《호남절의록》(1799)김성원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광주 출생. 본관 광산(光山), 자 강숙(剛叔). 호 서하당(棲霞堂)ㆍ인재(忍齋). 아버지는 교위(校尉) 홍익(弘翼)이며, 어머니는 해주최씨(海州崔氏) 장사랑(將仕郞) 한종(漢宗)의 딸이다. 김인후(金麟厚)
고종후(高從厚, 1554~1593), 湖節1下-163-2, 光州, 壬辰, 孝烈公-《호남절의록》(1799)고종후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도충(道冲), 호는 준봉(隼峰), 부봉(阜峯)이다. 광주 출신. 형조좌랑 고운(高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고맹영(高孟英), 아버지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어머니는 김백균(金百鈞)의 딸이
고인후(高因厚, 1561~1592), 湖節1上-041-1, 光州, 壬辰, 高敬命同殉 -《호남절의록》(1799)고인후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선건(善健), 호는 학봉(鶴峯). 형조좌랑 고운(高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고맹영(高孟英)이고, 아버지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이며, 어머니는 김백균(金百鈞)의 딸이다. 1577년 진사
호남절의록, 고성후(高成厚), 湖節1上-063-2, 光州, 高敬命 同倡조선 중기의 문신 죽촌(竹村) 고성후(高成厚, 1549∼1602)의 자는 여관(汝寬), 본관은 장흥(長興). 목사 경조(敬祖)의 아들로 남구 압촌동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554년(명종 9) 6세 때부터 조부 고중영(高仲英)에게 수학하
기효증(奇孝曾), 湖節2上-066-2, 光州, 壬辰, 義穀將 -《호남절의록》(1799)기효증奇孝曾(1550~1616)의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백로(伯魯), 호는 함재(涵齋). 청백리 기건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기진(奇進)이고, 아버지는 고봉 기대승(奇大升)이며, 어머니는 충순위(忠順衛) 이임(李任)의 딸이다. 1550(명종5년)년
김덕보(金德普), 湖節4下-127-1, 光州, 丁卯, 高循厚同倡-《호남절의록》(1799)김덕보(金德普)의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룡(子龍), 호는 풍암(楓巖). 아버지는 김붕섭(金鵬燮)이며, 어머니는 남평박씨(南平朴氏)로 직장 박계종(朴繼宗)의 딸이다. 형이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이다. 광주(光州) 석저촌(石底村), 지금의 충
청주한씨 봉강재鳳岡齋는 광주시 광산구 서봉동에 있다. 호남대에서 영광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서봉마을 들어가는 곳에 봉강재 입구 석비가 보인다.봉강재는 청주 한씨 제학공 한사기(提學公 韓謝奇, 1257~ 1314)의 재실이다. 건물은 정면4칸, 측면1칸의 한식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고당 김
이지호(李贄鎬, 1836~1892)는 광주 이씨, 자는 동현(東賢), 호는 지남(芝南)으로 광산(光山)에서 태어났다.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이다. 아들 이승우(李承愚, 1855~1919)는 화순 출신으로,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서양 오랑캐에 대응하여 자주적인 사상
광산구 박호동 535-3 박산마을 입구에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梁山璹을 비롯한 송천 양응정 가족 8명의 충효열행을 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인 양씨삼강문梁氏三綱門과 임류정林流亭이 자리하고 있다.이곳에서 남쪽 방향의 박호등임로에 황룡강과 포전들을 바
북구 무등로 1021 (화암동) 마을 이름 화암은 주변에 꽃과 바위가 많아 화암花菴이라 했다거나 조선 중엽 송타宋柁 (1567~1597)가 마을 주변에 백일홍을 심어 화암당花菴堂이라 하고 그의 호를 화암花菴이라 한데서 연유했다 한다.그 이전에는 도자기를 구웠던 곳이었던 탓에 ‘불’의 의미 즉 ‘불바우’가 화(火) → 화(花)로
광산구 동곡분토길 195 (본덕동) 호가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 때 계유정란에 공을 세워 정란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세조 때 중추원첨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공조참판을 지낸 설강(雪江) 유사(柳泗: 1502∼1571)가 지은 정자이다.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서쪽 무이구강武夷九江의 위에 있다.
광산구 본량본촌길 29 (동호동) 호은정은 일제강점기 때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재실中齋室을 갖춘 팔작지붕의 건물로 1930년 호은 심노옥沈魯玉(1847~1915)이 설계만 한 상태에서 원운과 원기 등을 만들었다. 나중에 아들인 심원하가 지방 향리를 지내면서 완성하였다고 한다. 호수의 물가에서 숨어 산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