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남구 이장동수촌 고정봉⽔村 ⾼廷鳳(1743∼1822)의 묘역에 묘비는 정원용이 찬했다.髙廷鳳의 자는 鳴國이요, 호는 水村, 부친 髙暎과 모친 서산김씨 麒瑞의 딸 사이에서 1745년에 태어났다. 모친이 태몽에서 상서롭게 떠오르는 해를 안는 꿈을 꾸어 어려서의 이름은 ‘捧日’이라고 불렸다. 고정봉의 집안은 역대
광주시 광산구 광곡길 133 너브실마을월봉서원 연혁과 고봉 기대승 선생의 행장 등을 기록한 묘정비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을 기리는 월봉서원은 고봉 사후 7년만인 1578(선조 11)년 호남유생들의 공의로 지은 신룡동의 망천사(望川祠)로부터 비롯되었다.그 후 정유재란의 화로 피해를 입고 월봉산 아래
광주시 남구 압촌길 68(압촌동)1917년남구 압촌동의 고씨삼강문과 추원각을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솔숲을 배경으로 산기슭에 자리잡은 고원희 가옥이 있다. 고택에 못미쳐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파향정(把香亭)’이다. 정자 옆으로는 고원희 가옥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콩문화센터가 있다.
대문채
광주시 북구 무등로 1040(화암동)이 해광송선생지천(海狂 宋先生支阡)은 《송자대전》과 《해광집》에는 海狂處士宋公墓表로 기록되었고, 이 해광송선생지천은 석곡수원지 위 관광도로 동쪽에 있던 묘비를 옮겼다.호남에는 옛날부터 으뜸가고 위대하며 어질고 뛰어난 선비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세상을 잘못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서남쪽 30리에 있는 데 집의 청심당 이조원(李調元, 1433~1510)이 건립했다. 현재의 광주시 남구 구만산길 34, 광산이씨 상서공파의 여재각 옆에 있었다고 한다. 필문 이선제의 셋째아들이다. 아버지의 시묘를 마친 후 그 옆에 다시 이 당을 지어 그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한 건물이다. 청
광주시 남구 포충로 767(원산동)포충사정화기념비는 포충사 경내에 있다.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싸움에서 충절한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곳이다. 기념비는 1978년부터 3개년 간에 걸쳐 호남의 대표적 호국선열 유적지로 포충사의 신 사당을 짓는 등 정화사업을 벌인 것
광주시 남구 압촌동 산14(압촌길68)고씨 제각으로 고경명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옆에 고씨삼강문이 있다. 들어가는 문에는 ‘승훈문(承訓門)’이라는 이름이 명명돼 있다. 제봉의 뜻을 후손들이 길이 새기라는 의미일 터다.추원각 대청 위에는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인간이 세
지난해도 봄바람 삼월
봄일 때 /한번 둘러 서로 봐 말로는 그려 이제처럼 또 바래 남쪽은 멀어 /예대로 수양버들 푸릇푸릇 나 去歲春風三月時
一回相見語相思 如今又向南天遠 依舊垂楊사명대사(四溟大師)가 송암(松庵) 유평(柳玶)과 헤어지며 이 시를
읊었다.유평(柳玶)은 1577년 설강 유사의 여섯째 아들인 아
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은 17일 문화원 회원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9월중 지역문화답사로 벽진서원과 박호련 묘소, 봉산정사, 용두동고인돌 등을 둘러보고 지역문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이날 첫 방문지는 풍암동 벽진서원으로 이곳에 향사된 회배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김천일과 함께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隣社招邀慣 이웃 사람들 초청하기 일쑤였으니 良辰幾上亭 좋은 시절 몇 번이나 이 정자에 올랐던고廚煙隔岸白 언덕 너머 부엌에 밥 짓는 하얀 연기 酒幔颭樗靑 주막의 깃발은 바람결에 푸르네 林表投雙鳥 수풀 속엔 한 쌍의 새 날아들고 槐根臥數甁 괴목 뿌리에는 술병 몇 개 놓여있네 村童齊拍手 마을 아이들이 함께 박수치
官裏文書綴亂絲 관청의 문서철이 어지럽게 엮여 있는데行春又到習家池 봄의 계절 또 다시 술 마시기 좋은 때(습가지)에 이르렀네非闕泥酒停騶御 술에 취해 마차를 지체한 것이 아니라問柳尋花故作遲 버들을 묻고 꽃을 찾느라 짐짓 더디었다네습가지(習家池) : 중국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에 있는 못 이름. 토호(土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 1496~1568), 서하당 김성원(棲霞堂 金成遠) , 高敬命(고경명), 松江(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四仙(사선)'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息影亭二十詠(식영정이십영)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정철의 星山別曲(성산별곡)
식영정에서 술 취한 뒤 고제봉, 김상사 경생과 더불어 운자를 부르다物外情難盡(물외정난진) 물외는 정 다하기 어려운데人間事或乖(인간사혹괴) 인간사는 혹 일도 어긋나네杯盤賓主共(배반빈주공) 주안상을 주객이 함께 받고談笑古今偕(담소고금해) 고금의 이야기 함께 나눴네酒味傾還喜(주미경환희) 술잔을 기울이면 더 기
고경명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임훈 일행과 함께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산사에서 유숙하며 무등산 권역을 유람했다. 널리 알려진 고경명의 유서석록은 그 시절 등산 관행과 산행 경로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유서석록’이다. 산행 경로 : 증심사 → 사인암(舍人巖) → 증각사(證覺寺) →죽정(竹亭)&n
老向騷壇壯膽衰 나이 늙어 시 지을 근력 쇠해지니愁逢勍敵角雄雌 억센 이 만나서 대결하기 걱정이라.焉能賈勇嬰鋒鏑 무슨 용맹 가지고 잘 막아낼지只欲收兵偃鼓旗 그만 군사를 끌고서 달아나고 싶네.喜氣到君方奏凱 자네가 꼭 승리하려고 애를 쓴다면戒嚴如我費何誰 나도 하는 수 없이 계엄령 내려야지.書生事業眞堪笑 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