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당(熙政堂)에서 소대를 행하는 자리에 참찬관 정택하 등이 입시하여 《황명통기(皇明通紀)》를 진강하고, 재해로 세량(稅糧)을 감면해 주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 영조 3년 정미(1727) 4월 12일(무술) 맑음 사시에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갔다. 소대(召對)를 행하러 신하들이 입시한 자리이
장우귀(張宇龜)를 잉임(仍任)하도록 청하여 엄한 하교를 받았으므로 체차해 줄 것을 청하는 전라도 관찰사 김조택(金祖澤)의 상소 - 영조 2년 병오(1726) 4월 4일(병인) 맑음 전라도 관찰사 김조택(金祖澤)이 상소하기를,“삼가 아룁니다. 신은 본디 용렬하여 백에 하나도 잘하
탕평(蕩平) 등에 대한 소회를 진달하고, 정세 등을 이유로 체차해 줄 것 등을 청하는 헌납 정택하(鄭宅河)의 상소 - 영조 1년 을사(1725) 3월 25일(계해) 맑음 헌납 정택하(鄭宅河)가 상소하기를,“삼가 아룁니다. 신이 시종(侍從)의 자리에 서게 된 이래로 이제 16년이 되었습
전 교리 김홍석(金弘錫)과 같은 관사의 동료가 될 수 없는 혐의 등을 이유로 체직해 줄 것을 청하는 부수찬 강박의 상소 - 영조 즉위년 갑진(1724) 11월 24일(갑자) 맑음 부수찬 강박(姜樸)이 상소하기를,“삼가 아룁니다. 신은 맡은 직임에 대하여 참으로 몹시 외람되이
희정당에서 대신 등을 인견할 때 영의정 김자점 등이 입시하여 사역원 역관 등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 인조 26년 무자(1648) 10월 13일(갑진) 맑음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김자점(金自點), 좌의정 이경석(李景奭), 병조 판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구언 전지에 대한 배의 등 27명의 상소문 - 정조 22년 무오(1798) 11월 30일(기축)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農書)를 구하는 윤음을 내렸는데, 거기에 이르기를,“내년 기미년은 바로 선왕께서 적전(籍田)에서 친히 밭을 간 해이다. 50년 간을 임금
정언 박길언이 지평 조각을 삭직하도록 아뢰다 - 정조 15년 신해(1791) 8월 28일(경오) 정언 박길원(朴吉源)이 아뢰기를,“언관(言官)의 거취는 염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번 소금 가게와 땔나무 가게 등 두 가게에 패(牌)를 내준 일로 그 당시 사헌부
무신년에 종정한 송창기ㆍ김차동ㆍ김진희 등 209명에게 포장과 증직을 내리다 - 정조 12년 무신(1788) 3월 23일(을유) 오부(五部)와 제도에 무신년에 종정(從征)한 장사(將士)로서 생존한 사람과, 의를 지켜 순국(殉國)하였으면서도 아직까지 공적이 포양(褒揚)되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 아뢰게 하였다.<중략>
이발(李潑, 1544 ~ 1589)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菴), 본관은 광산이다. 제학 이중호(李仲虎)의 아들이며, 네 형제 중 둘째였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중후하고 엄정하였으며, 질박하고 성실하였다고도 하였다. 학문에 뜻을 두어 경연에서 왕도를 진달하고, 기강을 진작하고, 정도와 사도를 분
전남 감사 김시진이 조복양의 진소 공박으로 소를 올리다 - 현종(개수실록) 1년 경자(1660) 11월 9일(경신) 전남 감사 김시진(金始振)이 조복양(趙復陽)의 진소(陳疏) 공박으로 해서 소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신이 호조 판서 허적(許積)과는 선후배가 같지 않아서 서울에
조복양이 소를 올려 지신을 욕했다는 이유로 사직을 청한 전남 감사 김시진의 상소문 - 현종 1년 경자(1660) 11월 9일(경신) 전남 감사 김시진(金始振)이, 조복양(趙復陽)이 소를 올려 욕했다는 이유로 상소하여 사직을 청하였다. 그 대략에,“신과 호조 판서 허적의 무리와는
광주 사람 권이평이 청나라를 추종하여 참수를 당하다 - 인조 21년 계미(1643) 4월 18일(신사) 그전에 광주(光州) 사람 권이평(權以平)이 상소하여 병사(兵事)를 말하고 또 자기 아들을 심양에 보내 동궁의 관소에 급사로 쓰게 해달라고 청하였는데, 정원이 내용이 괴상하고
진인의 출현에 대한 변란의 조처 - 인조 6년 무진(1628) 12월 18일(갑진) 남원 사람 송광유(宋匡裕)가 언문으로 상변(上變)하기를,“전 좌랑 윤운구(尹雲衢)가 신과 친한데, 하루는 신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망하려고 하여 진인(眞人)이 이미 나왔다. 한 술서(術書)에 「하늘이 사람을 내렸으니 그 나라는 반드시 멸망할
전 인성 부원군 정철의 졸기 - 선조(수정실록) 26년 계사(1593) 12월 1일(경술) 전(前) 인성 부원군(寅城府院君) 정철(鄭澈)이 졸하였다.과거에 정철이 부사(副使) 유근(柳根)과 함께 사은사(謝恩使)로 경사에 갔다가 돌아왔다. 이때 동로군문(東路軍門)이 화의(和議)를 주장
전 도사 조대중을 하옥하여 죽이다 - 선조(수정실록) 23년 경인(1590) 3월 1일(임인) 전 도사(都事) 조대중(曹大中)을 하옥하여 죽였다. 대중이 전라 도사가 되어 역변의 초기에 부안(扶安)의 관창(官娼)을 대동하고 보성(寶城)에 이르러 서로 이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에
전라도 병마 절도사 겸 장흥 도호부사 이광악이 병영의 실태와 포도 대책을 아뢰다 - 선조 33년 경자(1600) 1월 12일(정사) 전라도 병마 절도사 겸 장흥 도호부사(全羅道兵馬節度使兼長興都護府使) 이광악(李光岳)이 장계(狀啓)하기를,“신은 신병(身病)이 날로 깊어져 직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