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풍암동 769-1 음성박씨문중회재유집목판懷齋遺集木板은 조선 선조 때 사헌부 시평 등을 지낸 문신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3)이 남긴 유집의 목판으로 18세기에 제작됐다. 현재 가로 54.5㎝×세로 33㎝의 69매가 남아있다. 판면은 좌우 쌍변으로 가로 34.5㎝×세로 21㎝이고, 반곽은 가로 16.5㎝×세로 21㎝에 계선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광주지하철 화정역 4번 출구로 나와 하동정씨 추선회관 쪽으로 내려오다 왼쪽 골목으로 꺾어 조금 걸어 들어가면 도심과는 낯선 풍경 하나가 펼쳐진다.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과 아파트를 담벼락과 병풍 삼아 자리하고 있는 화담사花潭祠가 그곳으로, 하동 정씨 사당이다. 1776년(영조5
서구 마륵복개로150번길 22 향림사(치평동)향림사香林寺 소장본所藏本 조상경造像經은 국내 최초로 1595년 담양 용천사에서 판각돼 인쇄된 초간본이다. 국내 3책만 발견된 희귀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상경은 불상을 조성할 때 복장물의 단식과 점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불상을 조성할 때 필요한 복
서구 상무대로 980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브레디관은 1961년 대건신학교 기숙사로 건립된 건물로 현재까지 신축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장식요소가 배제된 단순한 형태와 기능주의적인 공간 배치, 붉은 벽돌 외벽 등 1960년대 모더니즘 건축 형태를 보존 중이다. Y자 형태의 중복도 평면구조로 지어진 브레디
서구 유덕로 24 유덕동주민센터 마당(유덕동)유촌동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은 광주광역시 서구 유촌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유덕동주민센터 앞 화단에 자리하고 있다. 이 불상은 불상이나 보살상을 안치하는 자리인 대좌臺座와 등 뒤에서 일어나는 빛인 배광背光을 갖추고 있는데 네모난 대좌는 연꽃무늬가 조각돼
서구 금호운천길 85-15 운천사(쌍촌동) 운천사雲泉寺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은 금호지구 푸르지오 아파트 뒤편에 자리한 운천사내 석불로 조성 연대는 고려 초기다. 불상 높이가 2.1m, 무릎 폭이 2.1m에 이른다. 광주에서는 보기 드문 실내 마애불이라는 점이 역사적인 가치를 높여준다. 높이가 4m, 길이가 5.6m에 이르는
서구 용두학동 길 15(용두동)용두동 고인돌[支石墓]은 광주 소재 청동시대의 대표적 지석묘이다. 이곳의 고인돌군은 남북 방향으로 3줄이 배치돼 있는데 현재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10기에 불과하다. 주위에 덮개돌을 지탱하는 받침돌이 여러 개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2∼3기 정도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구 풍암동 (개인 소장품)석아정石啞亭 오방정五放亭 현판은 일제강점기 광주를 상징하는 세 인물의 삶과 정신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다. 현판에는 이들 세 인물의 자취가 그대로 서려 있어서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일본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2.8독립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산파역할을 했던 애국지
서구 금호운천길 31(금호동) 병천사秉天祠는 지방 세력가로 알려진 지응현池應鉉(1868∼1957)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당으로 충주 지씨들의 사우이다.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를 비롯해 전라도도원수를 지냈던 지용기(1330∼1392), 고려 명장 정지의 9대손인 정충신(1576∼1636), 서흥부사를 지냈던 지계최(?∼1636)
서구 동하길 10(세하동)만귀정晩歸亭은 흥성 장씨의 선조인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雨(1704∼1774)가 학문을 가르쳤던 옛 터에 후손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일제강점기 정자이다. 원래 건물은 소실됐으나 1934년에 다시 중건됐고, 1945년에 고쳐지었다.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북구 용봉동 1004-4 광주시립민속박물관 보관 중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 선생의 시문집의 목판각이다. 원래는 박상의 출생지인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의 송호영당에 영정과 함께 보관되어 있었으나 송호영당을 1728년에 광산구 소촌동으로 이전 건립하면서 옮겼다가 현재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눌재집訥齋集』은
광주광역시 서구 화개1로 53 광주전통불교영산회불교 전통 천도의식으로 불교문화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영산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의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른 죄업을 소멸하게 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중생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할 때
무형문화재 강산제岡山制 예능보유자 이임례는 이병규(판소리)와 춘향가 김상용(춘향가), 생전 목포시립국악원에서 강산제 소리를 했던 김흥남을 사사했다. 전형적으로 강산제 소리를 이어받은 이임례 예능보유자는 소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1941년 전남 진도 출생으로 국악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할 수 있었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이영애는 스승 박귀희 선생을 사사했다. 스승으로부터 가야금병창과 판소리를 익혔다. 그가 국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0살 때 국악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가야금을 배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가야금 병창은 민요나 단가短歌, 판소리 일부 대목을 가야금으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댄서들을 초청해 눈앞에서 직접 그들의 쇼를 관람하고 교류의 장을 만들어가는 ‘2018 스트릿댄스 배틀 LINE UP(라인업)’이 5월 27일 광주 아르코57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이날 무대는 스트릿댄스 장르 중 힙합과 왁킹 ‘배틀’로 펼쳐진다. 배틀은 일반적인 대회
광천동 광천동의 유래와 연혁광천동은 일제 때의 광천정光川町을 1947년부터 고쳐 부른 이름이다. 엣날에는 광주천가에 새로 방죽을 쌓았다고 해서 새방천 혹은 신방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 및 『호구총수』에 따르면, 현 광천동 지역은 광주목 군분면軍盆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언젠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에 목숨 걸고 지도 때문에 딸도 잃는 일들이 벌어진다. 지도는 문물이 소통하며 사람이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위성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으로 길 찾는 일이 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도는 삼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선사시대광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적, 유물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상무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확인된 인근의 서구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12만5천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삶의 흔적임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의 구석기 문화는 뗀석기로 대표된다. 이 뗀석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