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상무대로 1165(농성동)하정웅미술관은 옛 전남도지사공관을 리모델링해 광주시립미술관에 다수의 미술품을 기증한 재일교포 하정웅을 기념해 조성한 미술관.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1165에 위치해있다. 본래는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으로 활용하다가 2017년 하정웅미술관으로 새로 변화를 꾀했다.1982년 3월에
서구 서창동 603-2 일대서창나루는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었다. 현재 서창교라는 교량이 있었던 일대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극락진이라 했던 나루가 바로 서창나루를 말한다.극락진은 현재 광주~송정리를 잇는 도로인 광송도로가 지나는‘극락교’라는 다리 때문에 극락교 자리에 극락진이 있었을 것이란 혼동을 일으
『세종실록』에는 광주의 나루터로 북구 용두동의 거진巨津과 함께 서구의 벽진碧津을 이야기한다. 벽진나루가 『세종실록』151권 지리지 편에 광주 옛 무진군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 무등산은 진산이며 벽진도와 거진도가 있다고 했다.군의 서쪽에 있는 벽진나루는 영산강을 기준으로 그 동쪽에 위치한 광주 관아와 그 서쪽
덕흥나루는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에 있었다. 덕흥마을이 들어선 언덕은 전형적인 도상구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지역의 암석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대부분 풍화침식으로 들이 되었음에도 이곳만은 그것을 견뎌내고 여전히 언덕 형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락없이 산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이
화운로는 화정동 짚봉터널 앞 미래로21병원의 금화로에서 시작, 광주지하철 1호선 역인 화정역과 광주천을 가로지는 광암교를 지나 북문대로와 만나는 운암 사거리까지 4.2킬로미터의 도로다. 도로명 ‘화운’은 화정동의 첫 글자인 ‘화’와 운암동의 첫 글자인 ‘운’를 따 붙인 도로명이다.화운로를 따라가 보자. 도로 오른쪽에
무진대로는 서구 농성동 광천1교에서 광산구 운수동 운수 IC까지 이어지는 9,270미터 길이의 도로다. 무진대로 구간 중 광주 시청 가까이의 무진교에서 신세계 백화점 앞 광천사거리까지는 16차선 도로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무진대로변은 광주종합버스터미날이 있고 광주여대를 지나 무안 광주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어
서구 상무중앙로104번길(치평동)평화공원은 광주광역시청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형 공원으로 시청로가 공원 주변을 감싸고 상무중앙로104번길이 중앙을 가로지른 지역이다. 인근에 시청, 광주지방법원 등기국, 광주가정법원, 광주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은행 등이 있어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 후 산책
서구 내방로 152(쌍촌동)1995년 상무대 이전과 함께 정부가 광주시민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상무 신도심 개발지구내에 330,000㎡을 시민공원 부지로 무상 양여함에 따라, 5.18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208,000㎡ 규모의 5.18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5.18기념공원에는 기념문화원, 현황조각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국장미를 선보이는 광주광역시청 장미원이 5월말까지 시민 맞을 채비를 마쳤다. 시청 장미원은 광주시가 열린 청사를 지향하며 2016년 11월 마련한 곳으로, 총 면적 5850㎡에 장미 99종 3405그루와 허브식물인 라벤더 등 2종 1만1320본과 초화류 1750본으로 조성됐다. 특히, 장미는 96종이 영국장미(Engl
서구 운천로 165(쌍촌동) 일원운천호수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초기 상무대와 민력동 일대의 논에 물을 대는 역할을 했다. 상무대와 민력동 일대에 있는 수답水畓으로 물을 끌어대는 관개용 저수지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 방죽 위 금호동으로 가는 길 우측 깊숙한 산골짜기에 작은 규
서구 세하동 ‘마재’하면 금호동과 풍암동 경계에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 119풍암안전센터가 자리한 곳 일대를 마재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재마을은 광주시 서구 서창동 관할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있는 백마산의 말발굽자리에 소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광
서구 경열로(양동.농성동)돌고개는 서구와 남구의 경계에 놓여있다. 월산동과 농성동, 그리고 양동의 경계에 자리한 돌고개는 지금은 그저 그만한 곳이 됐지만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고개로 기능했다.고개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일정높이를 담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그렇지 않더라면 굳이 고개라 했을리 만무
서구 풍암동서구 풍암동 금당산 건너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127.6m이다. 옛 염주마을의 기우제 터였던 젯(짚)봉산(祭奉山)은 짓봉산, 연화산, 발산이라고도 하며 연화동 남동쪽에 있는 연꽃 형국의 산으로 ‘승낙봉’으로도 불렸다. 지형을 분석할 때 깊은 골짜기를 심곡深谷이라 하는데 이를 우리말로는 ‘짚은 골’이라 한다.
서구 용두동 산 전체의 모습이 둥글둥글 해 무등산을 연상시키는 송학산은 높이 212.3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산 곳곳에 큰 바위가 박혀있다. 서창동 학동마을과 절골마을 뒤에 자리한 송학산은 남구 압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자락에는 고인돌이 있다. 이는 오랜 역사의 증거다. 산 중턱에는 잡목림 숲이 우거져 가
서구 치평동 92-1번지 일대광주 최초의 인간 흔적이 남아 있는 서구 치평동 일대는 극락강과 그 지류인 광주천의 동쪽과 남쪽에 형성된 해발 30~40m의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지형은 선사시대 유적이 입지하는 일반적인 지형이다. 비슷한 환경을 갖춘 극락강 상류 지역에서 적지 않은 선사 유적들이 발견되어
서구 백설길 37(마륵동)운천사를 끼고 돌아가면 그 길목 중간쯤에 효열문孝烈門이 하나 서 있다. 효열부 관산임씨(1909~1969) 기행비孝烈婦冠山任氏紀行碑이다. 서창 출신 김평길金平吉이 그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1993년에 세운 것이다. 비문 내용을 보면 관산임씨는 임윤재任允在의 딸이며 김해 감무공파 김천두金千斗(1
서구 눌재로 420(세하동)임진왜란 의병장 삽봉 김세근 장군 훈적비勳積碑는 비문에 김해 가락국 수로왕의 제 60세손으로 성장과정과 임진왜란에 참여하여 금산전투에서 순국하고 부인도 목숨을 끊은 내용이 담겨 있다. 2000년에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장 오성근吳晟根과 학산사보존회장 김종훈金鍾燻 등이 서창한옥문화관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봉산재鳳山齋는 충주 박씨忠州朴氏의 재실로서 소촌동의 송호영당松湖影堂과 더불어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2019년11월 1일 새로운 재실을 중건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재실 앞에는 박상 선생의 행장비도 새로 세웠다.재실 안에는 박상 선생 영정과 광산 김충호金忠浩가 쓴 '봉산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화담사花潭祠는 하동 정씨 사당이다. 문절공 정수충鄭守忠(1401∼1469)에 대한 집을 지어 영정을 모시라는 왕의 교시가 내려졌고, 1478년 보성군수를 지낸 정화鄭和(1434∼1505)가 군분으로 이사,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만들면서 출발한다. 화담사를 중심으로 하동 정씨 집성촌이
서구 금호운천길 31(금호동) 병천사秉天祠는 지방 세력가로 알려진 지응현池應鉉(1868∼1957)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당으로 충주 지씨들의 사우이다.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를 비롯해 전라도도원수를 지냈던 지용기(1330∼1392), 고려 명장 정지의 9대손인 정충신(1576∼1636), 서흥부사를 지냈던 지계최(?∼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