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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32건)

장유- 名亭駐皂蓋 (풍영정에서) 계곡선생집 제28권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광산의 임 수재(任守宰)와 정 중서(鄭中書)가 함께 풍영정에서 모여 담양(潭陽)의 수재(守宰)인 이무백(李茂伯)을 전송하기로 했는데, 내가 병 때문에 약속 장소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서글픈 생각이 들어 시를 지었다.[光山任宰與鄭中書 共集風詠亭 送潭守
삼매당기(三梅堂記) - 계곡선생집 제8권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 제8권 / 기(記)광주(光州)는 호남 지방의 이름난 고을로써 서석산(瑞石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溪山)과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이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가 비옥하여 백성의 생활이 넉넉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대사(臺榭)와 원유(園囿)가 또한 많아 서
정홍명의 기옹만필畸翁漫筆
송강 정철의 넷째아들 기암 정홍명의 <기옹만필畸翁漫筆> 鄭弘溟著 ●율곡 선생이 화담(花潭.서경덕)의 학문에 대해 말할 때에는, “기(氣)를 이(理)로 아는 병폐가 좀 있다.” 하고, 《대학》소주(小註) 중 진북계(陳北溪.송나라 학자)의 설명에 대해 반박하여 말하기를,“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
정홍명(鄭弘溟) 기암기(畸庵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谿谷集)》권3 / 잡저(雜著) 편에 '서석산부 뒤에 제함[題瑞石山賦後]'이란 제목으로 정홍명鄭弘溟(1582~1650)을 평했다.기암자(畸庵子 정홍명(鄭弘溟)는 체격도 작은 데다 병에 많이 시달려 언뜻 보면 초췌하고 왜소한 하나의 남자에 불과할 뿐인데, 그가 지은 서석산부(
기대승(奇大升)의 고봉집(高峯集)
『고봉집』은 3권의 시문과 「논사록」 2권 등 모두 5권 5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張維와 張顯光이 썼는데, 장유는 기대승이 처음에는 김인후를 종유하다가 이황의 수제자가 되었다고 하였고, 장현광은 퇴계가 斂藏謙退‚ 淸修高節하다면 기대승은 超揚發越‚ 直截峻特하다고 평하였다. 기대승의 일생이 연도별로 자세하게 기
서강정 西江亭
광산구 어룡동 (호송마을)   어룡동은 2백여년전 박뫼마을에 살던 제주양씨 일부가 옮겨와 정착 개촌했다. 이후 죽산박씨가 입촌하여 지금에 이르고 속칭 ‘개솔’이라고 한다. 인가가 접하는 지점에는 좌우 두 곳에 정자가 있다. 두 곳 모두 서강정西江亭이라 부른다. 오른편 서강정은 2005년에, 왼편 서강정은 1918년
이은로(李殷老)
광주(光州) 출신. 1605년 선조 때에 별시 전시(別試殿試) 문과에 장원(壯元)하였다. 당시 상이 병들었다가 3년 만에 치유되어 경연을 열게 되자 축하하는 뜻에서 별시를 베푼 것이다.사헌부 감찰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벼슬을 달게 생각지 않고 오직 인재양성(人材養成)에 치중하였다. 후에 계곡(谿谷) 장유가 시를 지어 찬
김광욱-次光州極樂院谿谷韻
次光州極樂院谿谷韻暫卸征鞍駐 登臨感慨長 詩魂已漠漠 山色尙蒼蒼古壁留殘墨 遺珠落遠疆 悲吟續淸響 無復襲蘭香竹所集 卷之二죽소竹所 김광욱金光煜(1580∼1656)은 우부승지를 지내다 1638년 나주목사로 부임 받고 “好在金支使 김 지사 그동안 잘 있었는지 / 春來得寄聲 봄철 들어서야 소식 전할 수 있게 됐소”하며 서로 시를
장유-극락원
極望平郊豁 광활한 들녘 한눈에 들어오고通流二水長 가로질러 흐르는 두 물줄기 장대하여라雲山分歷歷 또렷이 보이는 구름 덮인 산들煙樹暗蒼蒼 푸르스름 어두운 자욱한 물안개 낀 나무들湖海饒形勝 좋은 경치 넉넉한 호수와 바다光羅接土疆 광주와 나주의 접경이라네郵亭駐征蓋 가던 수레 잠시 역참에 멈춰 서니滿路野棠香
정인서 문화비평10. 광주아트페어 왜?
광주아트페어는 올해 참 힘들 것 같다. 이제 4개월여 남았는데 아직도 조직을 제대로 꾸리지 못했으니 염려된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광주아트페어가 어려워진 배경에는 광주광역시와 한국미술협회광주광역시지회(광주미협)의 책임이 크다. 기본적으로 광주시가 늦게 공모절차를 밟았고 미협은 우왕좌왕했다.이 정도의 규모
김상헌-시민여상(視民如傷), 청음집(淸陰集) 청음집 제6권
중서(中書) 신여만(申汝萬) 군이 나와 더불어 붕우의 의리와 골육의 정이 있은 지 두 세대였는데, 근래에 임금의 곁에 있으면서 수고를 한 공로로 승진되었다가 얼마 뒤에 광주(光州)의 명이 있었다. 대개 옛날에 공경(公卿)의 직임을 맡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사(民事)를 다스리는 일에서 시험해 보았으니, 그 뜻이 여기
극락정
서구 서창동『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전라도 광산현에는 극락원極樂院이라고 하고 주의 서쪽 30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일대에는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왼쪽에는 서창교 일대 야트막한 언덕을 끼고 조선 중엽까지 한양길 중 하나였다.극락원은 조선 중엽 이후에는 사라진 역으로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 일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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