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충달(安忠達, ?)의 본관은 죽산(竹山)이며, 자는 효언(孝彦), 호는 하곡(荷谷)이다. 증조부는 안맹손(安孟孫), 조부는 안순정(安順貞), 부친은 장사랑(將仕郞) 안린(安鱗)이다. 부인은 노극창(盧克昌)의 딸 함평노씨(咸平盧氏)이다.《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에 의하면, 안충달은 1525년(중종20) 생원 3등 36위에 입
광주 광산구 ‘비밀의 서원, 월봉서원’이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브랜드 대상으로 선정됐다. ‘지역문화대표브랜드’ 선정 사업은 지역의 특화된 문화 발전을 유도하고, 지역문화 발전모델을 발굴, 확산하기 위해 지역의 우수한 문화브랜드를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으로 올해 아홉번째이다. 광주 월봉서원
광주광역시는 <도은선생집>과 운암서원 소장 <해광집목판>을 시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광주광역시 문화재위원회는 관계학자·전문가 조사, 30일 이상 문화재 지정예고 등의 결과를 검토해 도은선생집을 제30호, 광주 운암서원 해광집목판을 제31호 시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도은선생
본관은 달성이며 호는 노재이다. 조선 1559(명종14년)년 동곡 수성동에서 태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정자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덕령 장군과 함께 의거하여 영호남 각지에서 격전을 벌였으며 1593년 광주지역에서 복수장 고종후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진주성에
김억룡(金億龍, 1561~1592)의 자는 내무(內武), 호는 송암(松岩)이다. 절효공 후손이며 공신 모재 김사모(金嗣牟)의 차남이다.1589년(선조22) 무과 급제하여 용분위부사정(龍賁衛副司正)이 되었다. 정유재란때 형 억명, 아우 억호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원성으로 가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영광 송촌사(松村祠
남구 양과동 (광곡제 인근)남구 양과동은 중앙의 대촌천大村川을 따라 비옥한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어 지금도 물산이 풍부하고 풍치가 아름다운 고을이다. 이곳은 목가적인 풍경으로 많은 선비들의 은거터로 자리했다. 조선 중기에 당시 대촌면 이장리 광곡마을 이관산 기슭에 생원이었던 경주최씨 생원 최운환(崔雲漢, 1444
정지(1347∼1391)의 초명은 준제(准提), 호는 퇴암(退庵), 본관은 하동으로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전라도 나주목 거평부곡, 현 나주시 문평면 안곡리 죽곡마을에서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무과에 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였다.말년에 나주로 낙향하지 않고 광주목 편방면, 현 동구 동명동으로 낙향하였다. 그가 광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산 1023(북구 송강로13)김덕령(金德齡) 박광옥(朴光玉) 오두인(吳斗寅) 김덕홍(金德弘) 김덕보(金德普)를 배향한 사우1604년(선조 37) 창건1604년(선조 37) 창건 당시 명칭 「벽진서원(碧津書院)」, 박광옥(朴光玉)을 제향1678년(숙종 4) 지방사람들의 발의로 김덕령(金德齡) 추향, 명칭 「의열사(義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715-1(남구 지산재길51)지산재(芝山齋)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신주를 모신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다. 1979년 8월 3일 광주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강당인 지산재와 내외삼문ㆍ영당이 있는데, 그 중 지산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광곡길 133)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전기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1578년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로 호남정신문화의 산실로 일컫고 있다. 기대승(奇大升), 박상(朴祥), 박순(朴淳),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등 조선 명신들을 배향하고 있다.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235-(무등로 1040)운암서원(雲巖書院)은 원래 해광 선생이 자란 광주시 북구 운암동 자락 황계리에 세워졌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됐다가 1994년 지금의 광주시 북구 무등로(화암동)에 재건됐다. 사당에는 해광 선생과 사위 석주 권필, 아들 타의 영정과 신위가 있다. 서원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했던 사우생룡동 314번지에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복룡사유허비(伏龍祠遺墟碑)는 고려말 72현의 한 사람 문춘공 복애 범세동(范世東)을 주축으로
학봉(鶴峰) 범가용(范可容), 용계(龍溪) 범천배(
광주광역시 광산구 대산동 대야마을, 송정리에서 영광쪽으로 10여 km를 가다가 삼도 삼거리에서 나주쪽으로 2km 남짓 가면 오른편으로 대산동 대야마을이 나온다.이 마을
후록(後麓)에 대산사(大山祠)가 있다.1727년(영조 3) 창건했고,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광복 후인 195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