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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부사로 부임하는 고용후를 전송하는 시의 서문 -어우집

남원 부사로 부임하는 고용후를 전송하는 시의 서문〔送南原府使高用厚 詩序〕 -어우집 제3권 / 서(序) :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 1559~1623)


내가 듣건대, 호랑이의 새끼는 소를 잡아먹을 수 있고 천리마의 새끼는 어미를 추월한다고 한다. 양이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먹는 것은 공경할 줄 알아서이고, 새가 먹이를 물어다 어미 새를 먹이는 것은 봉양함을 알아서이다. 백로는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눈처럼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칠하지 않아도 옷 칠한 것처럼 검으니 그 족속이 원래 그러해서이다. 얼음이 물에서 생겨나지만 물보다 차갑고 청색이 쪽에서 생겨나지만 쪽보다 푸르러 생기게 해준 대상을 욕되게 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활을 잘 만드는 궁장(弓匠)의 아들은 키를 만들고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가죽옷을 만들며, 아비가 장작을 쪼개 놓으면 그 아들이 지고 가고아비가 집터를 닦으면 자식이 집을 완성시키는 법이니, 이와 반대로 하는 것은 천리(天理)를 거스르는 것이다.


지금 용성 태수(龍城太守 용성은 남원(南原)의 옛 지명)는 제봉(霽峰) 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충성을 바쳐 세상을 떠나고 태수는 효성으로 보답하였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도는 입신양명이 우선인데 일찌감치 급제하여 청요직에 올라 부친을 추증시켰으니 부모에 대한 보답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예문관을 떠나 묵수(墨綬)를 차고 독서당을 떠나 동부(銅符)를 차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 임진왜란 때 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적진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떠날 적에 태수는 열 살도 되지 않은 나이로 말고삐를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기로에서 영영 이별하였다. 선생이 편지가 든 주머니 하나를 손수 그의 허리에 채우며 말하길,


“나와 네 형들은 나라를 위해 마땅히 죽어야하지만 아이가 무얼 알겠는가. 돌아가 네 어미를 봉양하고 네가 장성하거든 나의 유고(遺稿)를 간행하여 세상에 전한다면 내가 죽더라도 영원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힘쓸지어다.”


하였다. 태수는 부친의 유언을 가슴에 새겨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근래 용성의 태수 자리가 비게 되었을 때 마침 내가 이조에 있을 때라 여러 번 나의 집에 방문하여 지성으로 그 자리를 구하였으니, 간행하는 자금이 많이 필요하여 집안에서 개인적으로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수의 개인적인 감정이 비록 간절했지만 조정에서 지금 그를 매우 의지하고 믿고 있으니 이조를 주관하는 자는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을 뒤로하는 것이 본디 마땅하다. 다만 생각건대, 나 또한 일찍이 문장에 종사하여 망녕되게도 오랫동안 전하려는 마음에 평생의 흩어진 원고를 수습하여 분량이 말만한 것이 50권이니, 만약 후세에 다시 양자운(揚子雲)이 있다면 죽더라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명월(明月)의 구슬과 야광(夜光)의 보옥이 있어 그 크기는 손에 가득 차고 그 광채는 조승주(照乘珠)와 같거늘 없애버리고 내버려두어 똥 더미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이 두 가지 보물이 또한 욕되지 않겠는가. 종이를 잘라 돈처럼 만들고 꼴을 묶어서 개 모양으로 만들어, 헝겊으로 싸고 상자에 넣어 보관하여 사당에 올리고 향불을 쐬게 한다면 이 두 가지 물건이 또한 영화롭지 않겠는가. 지금 가죽신 만드는 장인이 신발을 만드는데 기술이 부족해도 푸른 가죽으로 덧대고 자주색 실로 끈을 만들며 그 신발 구멍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그 바닥은 분칠하여 시장에 판다면 오히려 열 배의 값어치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문(文)이란 어떤 물건인가? 성정(性情)에서 나온 것이다. 주공(周公)의 뜻과 공자(孔子)의 사상, 경전(經傳)의 말과 뜻은 백 대를 가로질러 천하를 뒤덮는다. 이 문장 짓는 재주를 연마하는 자들은 자신의 글이 허무하게 내버려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장을 지을 적에 간을 끄집어내고 신장을 쥐어짜서 오장을 불태우고 아침저녁으로 고생하며 축을 쌓고 편을 누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홀연히 길이 이별하며 그 자손에게 맡겼으니, 자손된 자가 만약 훌륭하게 판각하여 책으로 간행하여 온 고을과 큰 도성에 전하고 중국에까지 유입시켜 천하 만세에 퍼지게 한다면 비록 죽었더라도 영원할 것이리라. 만약 이러한 이치를 모른 채 작은 비용을 아끼느라 마멸되도록 내버려두어 끝내 쥐가 파먹게 만든다면, 비록 형산(荊山)의 띠 풀로 술을 걸러 신령을 부르고 강남(江南)의 쌀로 밥을 지어 제수를 올리고 울창주(鬱鬯酒)를 떠서 땅에 부으며, 살찐 소의 다리 힘줄을 삶아 국그릇에 올리고 은색 비늘의 물고기를 잡아다 회를 쳐서 제기에 올리며, 팔일(八日)의 군무와 육영(六英)의 음악으로 제향을 하더라도 혼백이 지각이 있다면 어찌 돌아보려 돌아보겠는가.


지금 태수를 보니 진정 선생의 아들이로다. 아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절의를 수립하였고 자식은 다함이 없는 효행을 세워 이미 대대로 그 아름다운 덕을 이루는데, 다시 이조를 맡은 자로 하여금 그 경중을 가리고 그 거취를 살펴서 영원히 전해질 사업을 이루게 하였으니 어질구나, 태수여! 호랑이와 비교하면 울음소리가 모든 짐승을 떨게 할 것이니 어찌 다만 소를 먹을 것뿐이겠는가. 말과 비교하면 하루에 이 천 리를 달릴 것이니 어찌 다만 어미를 초월할 뿐이겠는가. 무릎을 꿇어 젖을 먹는 공경은 천성에 나왔고, 먹이를 물어다 어미를 먹이는 성심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족속에 부끄럽지 않고 생기게 해준 대상을 욕되게 하지 않으며, 키와 가죽옷을 만드는 것을 폐기하지 않고 장작을 지고 집을 만드는 것을 그치지 않아 천리의 올바름에 순응하였다. 태수의 효성은 선생의 충성에 부합하는 바가 있도다! 만약 간행의 일이 끝나 뜻한 바가 이미 이루어졌는데도 또다시 태수로 하여금 백 리 되는 지역에 머물러 있게 한다면 이는 이조를 주관하는 자의 죄일 것이다. 태수여 힘쓸지어다! 태수가 마침 떠날 때 내가 병석에 있었던지라, 지금 뒤늦게 그 본말을 미루어 서술하고 이어서 그 시에 화운(和韻)한다.


[주-D001] 남원 …… 서문 : 
이 글은 1616년(선조38)에 남원 부사(南原府使)로 부임하는 고용후(高用厚, 1577~?)를 전송하며 쓴 시의 서문이다. 그러나 시는 부기되어 있지 않다. 고용후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선행(善行), 호는 청사(晴沙)이다. 내직으로는 예조 좌랑ㆍ병조 좌랑ㆍ병조 정랑ㆍ판결사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남원 부사ㆍ고성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주-D002] 백로는 …… 검으니 : 
《장자》 〈천운(天運)〉에, “무릇 백로는 날마다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칠하지 않아도 검다.[夫鵠不日浴而白, 烏不日黔而黑,]”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03] 얼음이 …… 푸르러 :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4] 활을 …… 만들며 : 
《예기》 〈학기(學記)〉에,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가죽옷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고, 활을 잘 만드는 궁장(弓匠)의 아들은 아비의 일을 본받아 응용해서 키 만드는 것을 익히게 마련이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D005] 아비가 …… 가고 :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7년 조에, “그 아비가 장작을 쪼개 놓았는데, 그 아들이 능히 짐지지 못한다.[其父析薪, 其子弗克負荷.]”라고 한 말을 변개하여 사용한 것이다.
[주-D006] 아비가 …… 완성시키는 : 
《서경》 〈대고(大誥)〉에, “아비가 집을 지으려 하여 이미 설계까지 끝냈다 하더라도, 그 자식이 집터도 닦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집이 완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不肯堂, 矧肯構?]”라고 한 말을 변개하여 사용한 것이다.
[주-D007] 제봉(霽峰) : 
고경명(高敬命, 1533~1592)으로,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ㆍ태헌(苔軒),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光州)의 의병 6천여 명을 이끌고 금산(錦山)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때 두 아들 인후(因厚)와 종후(從厚)도 참전하여 인후는 함께 죽고 종후는 부친의 시신을 수습해 돌아왔다가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종후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주-D008] 묵수(墨綬)를 차고 : 
묵수는 동인(銅印)에 매달아 놓은 끈인데, 지방의 수령으로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주-D009] 동부(銅符)를 차니 : 
동부는 지방 수령이 차는 관인(官印)을 가리킨다.
[주-D010] 후세에 다시 양자운(揚子雲) : 
그 저술에 대해 올바르게 평가해 줄 안목을 갖춘 후세 사람을 뜻한다. 자운은 한나라 때의 유학자인 양웅(揚雄)을 가리키는데, 그가 《태현경(太玄經)》을 지었을 때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비웃자 이르기를, “세상이 나를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후세에 다시 양자운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좋아할 것이다.” 하였다. 《五百家注昌黎文集 卷17 與馮宿論文書》
[주-D011] 조승주(照乘珠) : 
광채가 멀리 비쳐 수레 여러 채의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구슬을 가리킨다. 《사기》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에, “위왕(魏王) 이 제왕(齊王)과 들에서 만나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과인(寡人)의 나라는 소국이지만 그래도 열두 채의 수레 앞뒤를 비치는 경촌(經寸)의 구슬이 열 개 있다.”라고 하였다.
[주-D012] 형산(荊山)의 …… 걸러 : 
축주(縮酒)는 제사에 올리는 술을 띠 풀에 거르는 의식을 가리킨다. 유종원(柳宗元)의 〈여최연주론석종유서(與崔連州論石鐘乳書)〉에 “형산의 띠 풀은 모두 축주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주-D013] 육영(六英) : 
전설상의 제곡(帝嚳) 고신씨(高辛氏)의 음악을 가리킨다.
[주-D014] 다함이 없는 효행 : 
지극한 효성을 뜻한다. 《시경》 〈기취(旣醉)〉에, “효자의 효성이 다함이 없으니, 영원히 그대에게 복을 내리리라.[孝子不匱, 永錫爾類.]”라는 말에서 나온 말이다.
[주-D015] 대대로 …… 이루는데 : 
후손이 선조의 아름다운 덕업을 계승하는 것을 뜻한다. 《춘추좌씨전》 문공(文公) 18년 조에, “대대로 그 미덕을 이루어서, 그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世濟其美ㅡ 不隕其名.]”라고 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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