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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정기 永思亭記 - 허백당문집 제4권

영사정기 永思亭記 - 허백당문집 제4권 :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

최후(崔侯)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있다가 외직인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가 출발할 때 우리 집으로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광주(光州) 사람입니다. 그래서 광주 경내에 세거(世居)하면서 양친을 받들어 모시고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님이 돌아가시어 건지산(巾之山) 기슭에 장사 지냈는데, 건지산은 집에서 10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자를 지어 ‘영사(永思)’라 이름하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면서 사모하는 마음을 붙이고 있습니다. 운각(芸閣)에서 공을 종유한 지 하루 이틀이 아니니 한마디 말을 받아 돌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영원히 효심을 지닌다.〔永思〕’라는 뜻이 참으로 크다고 본다. 이는 《시경(詩經)》에서 ‘영원히 효도할 것을 생각하는지라, 그 효심이 법이 된다.〔永言孝思, 孝思維則.〕’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사람에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이목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어서인데, 마음이 맡은 일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반드시 그 정성을 다하게 되고, 그 결과 반드시 자신의 직분에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하게 된다. 집 안에 들어가서는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생각하고 출사해서는 임금에게 충성할 것을 생각하는데, 그 마음은 매 한가지인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더할 나위 없는 지극정성으로 자애롭게 따뜻이 보살펴 주었으니, 자식 된 자가 그 망극한 은혜를 다 값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직 나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부모의 뜻을 공경히 순종하여 어김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옷이 따뜻한지 추운지를 여쭈어 그 마땅하게 해 드릴 것을 생각하고, 음식을 달고 부드럽게 하여 부모의 구미에 맞도록 할 것을 생각하며, 병들어 아프거나 몸이 가려울 때는 공경히 안마하고 가려운 데를 긁어 드릴 것을 생각하고, 출입할 때는 앞서기도 하고 뒤에 따라가기도 하여 공경히 부축할 것을 생각하며, 기쁜 얼굴빛과 부드러운 태도를 지녀 그 효심을 일으킬 것을 생각해야 한다.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의 영예를 현창할 것을 생각하되 혹 불행히도 부모가 죽게 되면 상사에는 슬픔을 생각할 뿐이고 제사에는 공경을 생각할 뿐이니, 마치 부모의 탄식하는 음성을 곁에서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고 국그릇이나 담장에서 부모의 모습을 뵙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여 언제 어디서라도 생각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는데, 하물며 그 부모가 묻힌 선산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선인(先人)이 이곳에 혼백을 남긴 것을 생각한다면 나아가서는 부모의 묘소를 둘러보고서 그 봉축과 도랑을 수리할 것을 생각하고 그 잔디와 나무를 잘 기를 것을 생각하며, 물러나서는 잔디와 나무가 푸르게 잘 자란 것을 보고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눌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자를 지은 까닭인 것이다.


오래도록 이러한 마음을 생각하면 효심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효심이 줄어들지 않으면 능히 그 직분을 다하게 될 것이다. 최후가 능히 부모를 섬기는 정성을 임금을 섬기는 일에 옮기고, 또 능히 임금을 섬기고 남는 충성을 미루어 이 현(縣)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한다면, 옥과의 백성들이 그 혜택을 받는 것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최후는 문사(文詞)로 과거에 급제하여 명성이 조정에 자자하다. 이번에 이처럼 웅재(雄才)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방으로 내려가 탄환 같은 소읍(小邑)을 다스리게 되어, 사람들이 모두들 난봉(鸞鳳)이 가시나무에 앉아 곤욕을 당한다고 애석해하지만, 부모에 대한 효심을 길이 간직하려는 최후의 마음에서 볼 때는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최후는 아무쪼록 노력할지어다.


소양(昭陽) 단오(端午) 뒤 3일에 경숙(磬叔)은 기문을 쓴다.


[주-D001] 영사정기(永思亭記) : 
옥과 현감(玉果縣監)으로 부임하는 최형한(崔亨漢, 1460?~1504)을 위해 그의 양친 묘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정자에 붙인 기문으로, 1493년(성종24) 5월 8일에 지었다. 정자의 이름은 《시경》 〈대아(大雅) 하무(下武)〉에 “영원히 효도할 것을 생각하는지라, 그 효심이 법이 된다.〔永言孝思, 孝思維則.〕”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지은이는 이 ‘영원히 효심을 지니는 것〔永思〕’에 대하여 가정과 조정에서의 적절한 마음가짐을 언급한 다음, 효와 충은 한가지 마음이고 이 마음을 미루어 고을을 다스릴 것을 당부한 뒤, 유능한 인재가 지방관으로 내려가는 것을 위로하고 있다. 이 글은 사(思)의 의미를 《예기》 등의 구문을 인용하여 부모와 임금, 그리고 고을로 확장해 나간 것이 특징이다.
[주-D002] 최후(崔侯) : 
최형한을 말한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탁경(倬卿)이다. 1483년(성종1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전교서 정자(典校署正字)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연이어 양친의 상을 당하였고 복을 마친 뒤에 사헌부 감찰을 맡았다. 1493년 옥과 현감으로 나갔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1498년(연산군4)에 사간원 헌납이 되고, 이해 4월에 장령이 되었다. 1503년 영암 군수(靈巖郡守)가 되었다. 다음 해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폭정에 항의하여 궁궐 앞에서 대명(待命)하다가 굶어 죽었다.
[주-D003]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 
사헌부 감찰을 고려 시대 관직으로 표현한 것이다. 《企齋集 監察李侯墓碣銘》 전중시어사는 고려 시대 어사대(御史臺)의 벼슬 이름인데, 이 어사대의 기능을 한 것이 조선 시대의 사헌부여서 어사대는 사헌부의 별칭으로 쓰였다.
[주-D004] 운각(芸閣)에서 …… 지 : 
대본에는 ‘從公藝閣者’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藝’를 ‘芸’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운각은 교서관(校書館)의 별칭이다. 운각은 운향각(芸香閣)의 준말로, 고려 시대에 경적(經籍)과 축문(祝文)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비서성(秘書省)의 별칭인데, 운초(芸草)가 본디 서적의 좀벌레를 없애는 효과가 있어 서고에는 반드시 운초를 비치했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최형한(崔亨漢)이 1484년(성종15)에 전교서 정자(典校署正字)를 맡은 적이 있는데, 이 전교서는 1466년(세조12)에 교서관을 고친 이름으로, 1484년에 다시 교서관으로 고쳤다. 성현과 교서관의 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으나, 성현이 1484년 《풍소궤범(風騷軌範)》 등의 서책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최형한과 교유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D005] 그 효심이 …… 말 : 
대본에는 ‘孝思維則之思也’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之’ 뒤의 ‘思’를 ‘辭’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6] 무릇 …… 있어서인데 : 
이 글의 취지와 관계가 깊은 진사도(陳師道)의 〈사정기(思亭記)〉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니 …… 묘사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난다.〔目之所視而思從之 …… 視廟社則思敬.〕”라고 한 구절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이다.
[주-D007] 마음이 …… 것이니 :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마음이 맡은 일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그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생각하지 않으면 맡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한다.〔心之官則思, 思則得之, 不思則不得也.〕”라고 하였다.
[주-D008] 옷이 …… 지녀 : 
《예기》 〈내칙(內則)〉에 “며느리가 시부모의 거처에 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입고 있는 옷이 춥고 더운지를 묻고 아프고 가려운 데는 없는지 여쭈어 공경히 안마도 하고 긁어 드리기도 한다. 출입할 때는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여 공경히 부축해 드린다.〔及所, 下氣怡聲, 問衣燠寒, 疾痛苛癢, 而敬抑搔之. 出入則或先或後, 而敬扶持之.〕”라고 하는 말이 있다.
[주-D009] 혹 …… 되면 : 
대본에는 ‘其惟不幸而死亡焉’으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근거하여 ‘惟’를 ‘有’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10] 상사에는 …… 뿐이니 : 
《논어》 〈자장(子張)〉의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얻을 것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며, 제사에는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에는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을 것이다.〔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라고 하는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주-D011] 마치 …… 하고 : 
《예기》 〈제의(祭儀)〉에 “제사 지내기에 앞서 재계한 지 3일이 되면 마침내 고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게 된다. 이리하여 제삿날,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고인의 영혼이 그 자리에 있는 것과 방불하게 느껴지며, 제사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면 반드시 마음이 숙연해져서 고인의 음성을 듣는 것 같으며, 문밖으로 나가 들으면 반드시 방 안에서 뚜렷하게 고인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 祭之日, 入室, 僾然必有見乎其位, 周還出戶, 肅然必有聞乎其容聲, 出戶而聽, 愾然必有聞乎其歎息之聲.〕”라고 하였다.
[주-D012] 국그릇이나 …… 하여 : 
요(堯) 임금이 생전에 허름한 궁실에서 거처하고 음식도 조촐하였으므로, 요 임금이 죽은 뒤에 순(舜)이 3년 동안이나 사모하면서 “앉으면 담장에 요 임금이 나타나고, 밥상을 대하면 국그릇에 요 임금이 보였다.〔坐則見堯于墻, 食則覩堯于羹.〕”라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53 李固列傳》
[주-D013] 난봉(鸞鳳)이 …… 당한다 : 
현사(賢士)가 낮은 지위에 있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한 때 고성 영(考城令) 왕환(王渙)은 엄맹(嚴猛)한 정사를 숭상하였는데, 그 고을 포(蒲)의 정장(亭長)인 구람(仇覽)이 덕으로 사람을 교화시킨다는 말을 듣고 그를 주부(主簿)로 삼은 다음 그에게 말하기를 “주부는 진원(陳元)이란 사람의 죄과를 듣고도 처벌하지 않고 그를 교화하였다 하니, 응전(鷹鸇) 같은 맹렬한 뜻이 적은 게 아닌가?” 하니, 구람이 말하기를 “응전이라는 것이 난봉만 못합니다.” 하였다. 이에 왕환이 사과하고 그를 보내면서 말하기를 “가시나무는 난봉이 깃들 곳이 아니거니, 백 리의 작은 고을이 어찌 대현이 맡을 곳이리오.〔枳棘非鸞鳳所棲, 百里豈大賢之路?〕”라고 하고서 자신의 한 달 봉급을 그에게 주어 태학(太學)으로 보냈다고 한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주-D014] 소양(昭陽) : 
고갑자(古甲子)로 천간(天干) 계(癸)를 의미하는데, 실록과 이재(李縡)의 《도암집(陶菴集)》 권31 〈장령최공묘갈(掌令崔公墓碣)〉을 상고하면, 최형한이 옥과 현감으로 나간 것은 1493년(성종24) 계축년에 해당한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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