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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 - 자해필담(紫海筆談)

김덕령 - 자해필담(紫海筆談) : 하담(荷潭)김시양(金時讓, 1581~1643)

<중략>

이몽학(李夢鶴)이란 자는 서울의 천한 서얼인데, 몹시 방자하고 건방져서 그의 아비에게 내쫓기었다. 호서와 호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한현(韓絢)이 선봉장이 되자 그의 군대에 예속되어 한현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선조 29년 7월에 이몽학이 먼저 홍산(鴻山)에서 군사를 일으켜 그 고을의 수령 윤영현(尹英賢)을 사로잡고 또 임천 군수(林川郡守) 박진국(朴振國)을 사로잡으니, 인심이 무너지고 흩어져서 감히 항거하는 자가 없었다. 잇따라 6ㆍ7개의 고을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한현은 일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호응하지 않았다. 이몽학이 진군하여 홍주(洪州)를 핍박하니, 목사 홍가신(洪可臣)은 일이 뜻밖에 일어났으므로 손을 써볼 계책이 없이 다만 성문을 닫을 뿐이었다. 도원수의 종사관 신경행(辛景行)이 마침 왔다가 격문(檄文)을 보내어 수사 최호(崔湖)를 불렀다. 최호가 군대를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오니, 인심이 비로소 진정되었다. 무장 박명현(朴命賢)은 날래고 꾀가 있는 사람인데, 상주노릇을 하느라고 고을 안에 있었다. 홍가신이 부르자, 박명현은 즉시 융복(戎服)을 갖추고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성의 수비는 더욱 견고하게 되었다. 이몽학이 처음 군사를 일으킬 때에 그의 무리들에게 속여 말하기를,


“김덕령(金德齡)이 나와 약속이 있고, 도원수ㆍ병사ㆍ수사도 다 내통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호응할 것이다.”


하여, 여러 무리들이 그렇게 여겼는데, 홍주에 군사를 내어 주둔하게 되었을 때, 여러 무리들은 수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그가 속였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군사의 사기가 떨어져서 밤중도 안 되어 반군(叛軍)은 무너지고 말았다. 윤영현이 뛰어나와 성 아래에 이르러 부르짖기를,


“적병이 무너져 흩어졌으니 나와서 뒤쫓아 치소서.”


하였으나, 성중에서는 믿지 않고 명하여 윤영현을 묶어서 잡아 오게 하였다. 그러나 새벽이 되어서 살펴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중은 비로소 후회하고 군사를 내보내어 추격해서 많은 포로와 수급(首級)을 얻었다. 그의 부하 임억명(林億明)이란 자가 이몽학의 머리를 베어 바치었다. 한현도 일이 발각되어 베임을 당하였다.


김덕령(金德齡)이란 사람은 광주(光州)의 교생(校生)인데, 용맹과 힘이 있었으며 스스로 둔갑술을 안다고 하였다. 이귀(李貴)가 그를 믿고 무군사(撫軍司)에 추천하기를,


“용과 범을 쫓아 잡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지혜는 제갈공명(諸葛孔明) 같고 용맹은 관우(關羽)보다 더하다.”


하니, 세자가 불러서 보고 장려하여 익호장군(翼虎將軍)을 임명하였는데, 선묘가 그 칭호를 초승장군(超乘將軍)이라고 고쳤다. 이때 온 나라가 두려워 떨며 그를 신장(神將)이라고 하였으며, 김덕령 자신도 또한 그렇게 스스로 믿어 사양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상은 술에 취하여 기세를 부리고 법을 어겨 쓸 만한 사람이 못되어, 적진과 3년을 마주 대했지만 한 치의 공도 없었다. 마침내 헛이름 때문에 이몽학이 무리에게 이끌려 이용되었다가 고문을 받고 죽었으니, 이 또한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이다.


적당이 김덕령의 이름을 인용하자, 상은 매우 놀라 즉시 좌우를 물리치고 여러 대신들과 의논하기를,


“김덕령은 용맹이 삼군(三軍)에 으뜸이고 또 친히 거느린 군사가 있으니, 만일 포박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니, 유서애(柳西厓)가 대답하기를,


“반드시 명령을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서성(徐渻)이 새로 영남에서 왔으므로 반드시 사정을 알 것이오니, 청컨대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다. 서성이 대답하기를,


“신이 오랫동안 남쪽 고을에 있으면서 그의 하는 바를 보니, 망령되고 범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용맹과 힘이 있다고 하지만 또한 남보다 썩 뛰어난 것은 아니오며, 크게 민심을 잃어서 친히 거느린 군사들도 다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므로 비록 명령을 거역하고자 하여도 또한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네가 잡아올 수 있겠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만약 도망해 숨었다면 신이 잡아올 수 없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를 체포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습니다.”


하였다. 상이 위태롭게 여기니, 서애가 아뢰기를,


“서성이 어찌 감히 성상의 위엄있는 지척의 거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큰소리 치겠습니까? 그 말이 꼭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신이 보장하겠습니다.”


하였다. 서성이 말하기를,


“한명련(韓明璉)이 지금 영남에 있는데, 또한 용감하옵니다. 그를 시켜서 도모하게 하고, 김응서(金應瑞)로서 항복한 왜병(倭兵) 50인을 이끌고 조력하게 한다면 김덕령이 어찌 감히 맞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의 계산으로는, 김덕령이 반드시 손을 모아 포박을 받을 것이므로 반드시 이러한 사태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상이 서성에게 명하여 급전(急傳)을 타고 가서 잡아오게 하였다. 서성이 가다가 전주(全州)에 이르니, 도원수 권율(權慄)이 이미 김덕령을 진주(晉州)에 감금하고 있었다.


권율도 그가 명령에 거역할 것을 염려하여 은밀히 성윤문(成潤文)을 시켜서 도모하게 하였다. 성윤문이 은밀히 김덕령에게 군무(軍務)를 의논하자고 청하니, 김덕령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단기(單騎)로 왔다. 좌정한 뒤에 성윤문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하기를,


“조정에서 자네를 잡으라고 명하였네.”


하니, 김덕령이 즉시 꿇어앉아 말하기를,


“상의 명령이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하오? 원컨대 나의 손을 뒤로 돌려 묶으시오.”


하였다. 성윤문은 그의 원통함을 가엾게 여겨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만 그의 두 손에 수갑만을 채워서 옥(獄)으로 보냈다. 서성은 김덕령이 이미 갇혔다는 말을 듣고, 조정에 장계를 올리기를,


“권율이 김덕령에게 이몽학을 치게 했는데, 김덕령이 4일 동안 머뭇거리며 성패를 관망하므로 가두었습니다.”


하였다. 그 여덟 글자가 드디어 김덕령의 단안(斷案)이 되어 사죄를 면치 못하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서성의 잘못이라고 했다.

<하략>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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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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