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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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생 명행기(宋生名行記) - 석주집 별집 제2권
서구문화원
날짜 2020-09-21 14:00
송생 명행기(宋生名行記) - 석주집 별집 제2권 : 권필(權韠,1569~1612)
군의 이름은 타(柁)이고 자는 시정(時正)이며 호남 사람이다. 정유년(1597, 선조30)에 왜적이 호남을 도륙할 때 군은 무안현(務安縣)에서 피난하였는데 밤중에 가다가 길을 잃어 적에게 사로잡혔다. 적의 배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려 할 때 군이 보니 적이 열 명도 채 못 되고 한 배에 포로로 탄 조선 사람이 많았다. 이에 몰래 한 배에 탄 사람들과 모의하여 틈을 타서 적의 칼을 빼앗아 적을 거의 다 베어 죽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 명의 적이 물에 몸을 던져 도망쳐서 다른 적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때문에 군은 적의 수중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군은 죽음에 임해 큰 소리로 외치기를 “나는 광주(光州) 송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이다. 불행히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제 또 불행히 죽게 되었다. 포로로 잡혀 배에 탄 그대들이 혹 조만간 적의 수중을 벗어나 귀환하거든 우리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기 바란다.” 하였다. 그리고 4년 뒤 경자년(1600)에 강태초 항(姜太初沆)이 일본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상세히 말해 주었다.
아아! 군은 평소에 기도(氣度)가 한아(閑雅)하며 몸이 여위고 섬약하여 마치 옷을 가누지 못할 듯하였으니, 바로 일개 서생일 뿐이었다. 그러나 환난에 빠졌을 때 기회를 틈타서 계책을 세워 칼로 적을 쳐 죽이고 마침내 떳떳하게 죽었으니, 열렬한 장부가 아니면 이러할 수 있겠는가. 군이 죽을 때 나이 31세였다.
군은 어려서 모친을 잃고 계모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으며, 아우와 누이를 대할 때 터럭만큼도 차별을 두지 않았다. 나는 군에게 매서(妹壻)가 된다. 예전에 내가 누차 중병에 걸려 걸핏하면 몇 달을 앓아누웠는데 군이 정성을 다해 탕약을 보살펴 옷에 띠를 풀지 않고 간호한 것이 여러 날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 병이 낫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아아! 나는 여기서 군의 인(仁)을 알았고, 군의 죽음에서 또 군의 용(勇)을 알았다. 아아! 군 같은 사람이야말로 옛날의 이른바 선인(善人)이 아니겠는가. 살아 있을 때 곤궁했고 죽을 때는 참혹했으니, 세상 사람들이 그저 하는 말로 “하늘은 선인을 저버리지 않는다.” 하는 것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군이 적의 포로가 된 뒤로 군의 아우 장(檣)이 부모를 모시고 북쪽으로 갔다. 진원현(珍原縣)에 이르러 허물어진 집에 들어가 쉬는데 왜적 한 명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적이 부모를 해칠까 두려워 곧바로 나가서 왜적을 유인해서 가다가 도중에 왜적에게 다른 동료가 없는 것을 보고 그 왜적을 때려 죽였다. 그리고 돌아가려 할 때 또 다른 왜적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들어갔다.
적장이 그를 사랑하여 머물러 있게 하려고 미녀 세 사람을 내어 놓고 마음대로 골라서 가지게 했으나 그는 받지 않고 날마다 도망쳐 우리나라로 돌아올 궁리만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돌아오지는 못했으나 뜻은 가상하기에 그 사실을 덧붙여 둔다.
경자년(1600, 선조33) 섣달 5일에 기록한다.
- [주-D001] 강태초 항(姜太初沆) :
- 1567~1618. 자는 태초이고 이름이 항이며 호는 수은(睡隱)이다. 정유재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다가 일본에 피랍되었다. 그 후 오사카에서 성리학을 전파하는 동시에 일본 정세를 조선에 보고하였다. 1600년에 돌아왔다. 저서에 《간양록(看羊錄)》, 《수은집(睡隱集)》 등이 있다.
- [주-D002] 옷을 가누지 못할 :
- 매우 몸이 약하고 공손한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부친 문왕(文王)을 섬길 때에 너무도 공손하여 “몸은 옷을 가누지 못할 듯하고 말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듯했다.〔身若不勝衣 言若不出口〕” 한다. 《淮南子 氾論》《小學 稽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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