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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朴君) 상현(尙玄) 에게 답함 - 명재유고 제17권


박군(朴君) 상현(尙玄) 에게 답함 -  명재유고 제17권 윤증(尹拯)

미발설(未發說)에 대해서는 주자와 율곡이 논한 바가 있어 아래에다 수록해 놓았으니, 이 두 조목을 자세히 음미해 본다면 기형(奇兄)과 그대가 한 말의 득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로 남헌(南軒)은 “중인(衆人)에게는 미발(未發)의 중(中)이 없다.”라고 하였고, 주자는 “혹 이런 때가 있기도 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율곡의 주장은 더욱 분명하였는데, 기형이 여기에서 견해를 취했으나 단지 말을 하는 과정에서 어긋나고 말았으니, - 예를 들어 정(情)을 가리켜 각자 갖추고 있는 태극이라고 하였습니다. - 그대의 말이 합당합니다. 하지만 그대가 남헌의 학설만 받들고 회옹(晦翁)의 학설을 추종하지 않은 것은 단지 중인의 정이 절도에 맞지[中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뿐입니다.
이것은 기(氣)에 악(惡)이 있다고 하여 성(性)이 선(善)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고 “중(中)하면 반드시 화(和)하고 화하면 반드시 중하여 두 가지로 나눌 수 없다.”라고 한 말은 더욱 적절치 않은 듯합니다. 정말 이 말대로라면 중을 이루고 화를 이루기[致中致和] 위해 어찌 각각 다른 공부를 하겠습니까.


[별지]

주자가 호광중(胡廣仲)에게 답한 편지에 이르기를, “흠부(欽夫)의 미발론(未發論)은 진실로 분별(分別)이 너무 지나친 듯합니다만 그가 말한 ‘없다[無]’는 것은 본래 이 이[理]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물욕(物慾)에 이끌려서 맑고 고요한 때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 또한 사람에 따라 부여받은 것이 같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성(性)이 고요한 사람에게 이런 때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경(敬)으로써 주재할 줄 모르면 혼매(昏昧)하고 박잡(駁雜)해져서 스스로 이를 깨닫지 못한 채 끝내는 필시 없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 퇴계(退溪) 선생이, “흠부의 주장에서 중인(衆人)은 미발(未發)할 때가 없다.”라고 항상 말하였으므로 선생이 그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

율곡 선생이 말하기를, “중(中)이라는 것은 대본(大本)을 의미하니, 어찌 선이니 악이니 말할 수 있겠는가. 중인의 마음은 혼매(昏昧)하지 않으면 반드시 산란(散亂)하여 대본이 서 있지가 않다. 그러므로 중이라 말할 수 없다. 요행히 일순간이나마 미발(未發)할 때도 있는데, 이렇게 미발할 때에는 전체가 맑아져서 성인(聖人)과 다름이 없게 된다. 다만 별안간에 그 본체(本體)를 다시 잃고서 그에 따라 혼매하고 산란해지므로 그 중을 얻지 못할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이 내용은 《성학집요(聖學輯要)》〈정심장(正心章) 함양조(涵養條)〉에도 보입니다. -


[문]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인생이정(人生而靜)’ 이상(以上)에 대해서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으며[不容說], 성(性)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성을 말할 때는 단지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를 말할 뿐이니, 맹자가 ‘성선(性善)’이라고 말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른바 ‘계지자선야’라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자의 말뜻을 살펴보건대, ‘인생이정’은 곧 ‘미발(未發)한 때’를 나타내고, ‘이상(以上)’은 ‘이전(以前)’을 뜻하니, ‘미발지전(未發之前)’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는 것은 성의 본체가 지극히 고요하여 볼 수 있는 형적이 없기에 이에 대해 말할 수가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성(性)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성을 말하는 순간 이미 정(情)과 섞여 있어 본래의 성이 아님을 말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성을 말할 때는 단지 〈계사전〉에 나오는 「계지자선야」를 말할 뿐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건대, ‘성을 말하는 순간’ 운운한 것은 아마도 ‘선(善)으로 성(性)을 말한 것’을 이르는 것이지 ‘성(性)이라 이름 한 것’을 이르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만약에 ‘성이라 이름 하면 성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문의(文義)가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중용(中庸)》에서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했고, 《예기(禮記)》에서는 ‘인생이정천지성야(人生而靜天之性也)’라 하였는데, 이 말들은 모두 사람이 태어난 이후[人生以後]에 그 본체를 가리켜 성(性)이라 이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자는 무슨 까닭으로 사람이 태어난 후에도 이기(理氣)를 구분하지 않고 통틀어서 성(性)이 아니라고 말했겠습니까? 대체로 성(性)은 말하기도 어렵고 이름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발현된 선(善)의 단서로 인하여 성(性)이 선하다고 말한 것이니, 이른바 선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발현되었기 때문에 성(性)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한 것은 인(人)과 물(物)이 태어나기 전을 말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주 선생(朱先生)이 이 설을 풀이한 것이 앞뒤로 같지 않으니, 부디 정론(定論)을 보여 주십시오.


[답] “성(性)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性)이 아니다.”라는 구절에 쓰인 두 성(性) 자는 서로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아랫글에서 또 “모든 사람이 성을 말한다.[凡人說性]”는 말이 있는데, 이는 “성을 말한[說性]” 이 문장의 성과 같은 뜻입니다. 이 때문에 그대가 의심을 가지게 된 것이나 그 실상은 단지 이와 같을 뿐입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몇몇 말씀들은 여간 친절하지 않아서 모두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대처럼 의심을 가질까 염려하였으므로 또 “말없이 이해하고 별도로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보라.”는 말씀을 하였던 것이니, 이 말을 버리고 다른 데서 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체로 이 단락은 “생지위성(生之謂性)”을 전반적으로 논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이 바로 기이고, 기가 바로 성이다.[性卽氣 氣卽性]”라고 말했고, 또 “선(善)은 본디 성(性)이니, 어찌 또한 성(性)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라고 하였고, 또 “생지위성(生之謂性)이니, 성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 가운데 성(性)의 본체를 의미하는 마지막의 성(性) 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형기(形氣)에 떨어진 뒤에 나온 성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의 본체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평이하게 보아도 이미 그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대의 설과 같이 “설성(說性)”의 ‘성’ 자를 ‘선(善)’ 자로 본다면 윗글에서 말한 “생지위성(生之謂性)”의 본뜻과 도리어 관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대 생각은 어떠합니까? 말씀하신 주자의 여러 설들은 단지 “성선(性善)”과 “계선(繼善)”의 뜻을 말한 것뿐으로 아마 서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부디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문] 보내 준 편지에, “‘설성(說性)’의 ‘성(性)’ 자를 ‘선(善)’ 자로 본다면 윗글에서 말한 ‘생지위성’의 본뜻과 도리어 관계가 없어지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말한 것은 ‘성(性)’ 자를 ‘선(善)’ 자로 본 것이 아니라, 성(性)의 선(善)함을 말한 것뿐입니다. 아랫글의 “‘모든 사람들이 성을 말할 때는 단지 〈계사전〉에 나오는 「계지자선야(繼之者善也)」를 말할 뿐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건대, ‘성을 말하는 순간’ 운운한 것은 아마도 ‘선(善)으로 성(性)을 말한 것’을 이르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성을 말하면서 선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이미 정(情)이지 성(性)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性)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윗글에서 이미 “선(善)은 본디 성(性)이니, 어찌 또한 성(性)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성(性)이 동(動)하여 감발(感發)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지 성(性)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곧바로 선악(善惡)을 가지고 성(性)이라 할까 염려되어 또다시 “‘인생이정(人生而靜)’ 이상(以上)에 대해서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으며[不容說], 성(性)을 말하는 순간 이미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니, 대체로 성의 본체가 지극히 고요하여 볼 수 있는 형적이 없으므로 이에 대해 말할 수가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보내 준 편지에서, “주자(朱子)의 여러 설들은 단지 ‘계선(繼善)’과 ‘성선(性善)’의 뜻을 말한 것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주자가 이르기를, “성(性)은 성일 뿐이니,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不容說]”의 뜻을 풀이한 것입니다. 또 “다만 이 성(性)은 본디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라고 하고, 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곳이 성의 본체이다. 이것은 마치 물[水]이 단지 물인 것과 같아서 별도로 한 글자도 덧붙일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불용설(不容說)’의 뜻을 풀이한 것이지, ‘계선(繼善)’과 ‘성선(性善)’의 뜻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주자어류》에서 이른 바 “별도로 자기 나름의 기준을 세워서 보라.”라고 한 것은 주자가 엄시형(嚴時亨)에게 답한 말이며, 구희손(歐希遜)에게 답한 말 또한 이와 같습니다. 대체로 계선과 성선의 설이 가리키는 바가 같지 않은데 정자가 이를 인용하면서 같은 것으로 보았으므로 두 분이 의심이 나 질문을 하게 되었고 주자가 이에 답을 한 것입니다.


정자의 생각은 아마도 이러했을 것입니다. 인성(人性)이 발(發)하기 시작할 때는 천리(天理)가 동(動)하기 시작할 때와 그 뜻이 차이가 없으니, 이은[繼] 뒤에 그 선함을 볼 수 있는 것은 천리이고, 발(發)한 뒤에 그 선함을 볼 수 있는 것은 인성인데, 그 형적으로 인하여 그 성을 말하기로는 피차가 한가지이므로 인용하면서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따져 들어가면 정자의 취지가 통창(通暢)하고 명백해집니다.
그런데 주자가 두 분의 질문에 답하면서 또한 의심이 없을 수 없다 하면서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답을 하였습니다. 또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에 인용된 주자의 말을 보면, “천도(天道)의 유행(流行)이 이와 같으므로 인성(人性)의 발현(發現)이 또한 이와 같다.”라고 하여, 주자는 이에 대해 전후로 다른 견해를 보였습니다. 한 말씀 해 주시어 이 의혹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미발지설(未發之說)에 대하여 기우(奇友)와 왕복하며 논변하였으므로 그 내용을 그대에게 말씀드렸는데, 그대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끝내 의혹을 풀어 드리지 못한 듯합니다. 보내 준 편지에 중화(中和)를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 하였는데, 나는 공효(功效)를 가지고 말한 것이지 공부(工夫)를 가지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중화라고 하는 것은 성정(性情)의 덕(德)을 표현한 것이므로, 이미 중(中)이라 한다면 이는 체(體)가 확립된 뒤를 가리키고 이미 화(和)라고 한다면 이는 용(用)이 행해진 뒤를 가리킵니다. 체와 용은 근원이 하나여서 둘로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우에게 준 편지〉에서 말한, “서로가 체용(體用)이 되므로 둘로 나눌 수가 없다.”라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말한 치중(致中)과 치화(致和)는 공부(工夫)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 본디 내외의 구별이 생기게 되니, 어찌 둘로 나눌 수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다시 회답해 주기 바랍니다.


보내 준 편지에서 날더러 남헌(南軒)을 학설만 받들고 회옹(晦翁)의 학설을 추종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남헌과 주자가 과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주자 초년의 소견은 기형(奇兄)의 견해와 같았지만 말년에 와서 그 오류를 깨달아 마침내 연평(延平), 정자(程子) 및 남헌의 설과 다름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경부(張敬夫)에게 준 편지〉에 “이 설은 더욱 이치에 어긋난다.”라고 스스로 주를 달았던 것이다. 또 주자가 쓴 〈중화구설서문(中和舊說序文)〉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주자가 전후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인(衆人)에게는 미발(未發)의 중(中)이 없다.”라고 한 것은 〈임택지(林擇之)에게 답한 편지〉와 《주자어류》 제12편에 유지(劉砥)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내가 말한 “중인(衆人)에게는 미발(未發)의 중(中)이 없다.”라고 한 것은 중인에게 원래 이 이치가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게 하지 못함을 말한 것입니다. 율곡이 이른 바 “일순간이나마 미발할 때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렇게 미발할 때에는 전체가 맑아져서 성인(聖人)과 다름이 없게 된다.”라고 한 것은, 단지 성(性)의 본체는 본래 선(善)해서 불선(不善)의 싹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 중인들이 모두 미발의 중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기질에 구애되어 대본을 세우지 못한다면 될 법한 일이겠는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대체로 기형은 미발의 중을 천명지성(天命之性)으로 보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한 반면에, 나의 생각은 미발의 중이 비록 천명지성이기는 하지만 본디 본체가 확립된 것을 지칭한 것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여쭐 때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에 이와 같이 자세히 말씀드리오니, 부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주-D001] 박군(朴君) : 
박상현(朴尙玄, 1629~1693)을 가리킨다. 자는 경초(景初), 호는 우헌(寓軒),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전라도 광주(光州)의 진곡(眞谷)에서 학문에만 전념한 학자이다. 아들 박광일(朴光一)을 송시열에게 보내 학문을 배우게 하였고, 그의 문집인 《우헌집(寓軒集)》에 송시열과 주고받은 편지가 여러 편 있으며, 송시열은 그를 모년지기(暮年知己)로 허여하였다고 한다. 《우헌집》에는 기정익(奇挺翼)에게 보낸 11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성리학의 격물, 이기, 태극에 관한 내용들이다. 《韓國文集叢刊解題 4輯 寓軒集, 遜齋集》
[주-D002] 기형(奇兄) : 
기정익(奇挺翼)을 가리킨다.
[주-D003] 남헌(南軒) : 
장식(張栻)으로 남헌은 호이며, 자는 흠부(欽夫)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2003) 광주 향토사 연구 (사)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
광주광역시 동구청(2021) 동구의 인물2 광주광역시 동구청
광주시남구역사문화인물간행위원회(2015) 역사를 배우며 문화에 노닐다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민속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21) 양림 인물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동구문화원(2014) 광주광역시 동구 마을문화총서 Ⅰ 광주동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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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화원연합회(2020) 광주학 문헌과 현장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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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북구문화원(2004) 북구의 문화유산 광주북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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