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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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상무대 비행장

광주 항공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지금의 상무지가 들어선 치평동이라 할 수 있지요. 1920년대 한반도에는 일본 육군의 항공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평양 능라도에 있었던 제6항공연대였는데 이 부대는 비상시 항공기의 이착륙을 위해 전국 각지에 임시 활주로를 물색했던 적이 있었어요. 한때 그 후보지 중 하나로 광주 계림동의 경양방죽이 거론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최종적으로 임시 활주로 개설이 이뤄진 곳은 치평동 일대였습니다.

1929년 일본 육군은 이곳을 임시 활주로로 선정하는 동시에 20여대의 항공기를 상주시킬 계획이었는데 실제 이 계획이 실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를 본격적인 민간 비행장으로 개발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상무대 비행장은 1937년 확장 공사를 시작해 193911월에 정식 비행장으로 개장했습니다. 그에 앞서 19385월 전북 고창 출신의 비행사인 신용욱이 승객 3명을 태우고 서울을 이륙해 4시간 만에 이 비행장에 착륙한 일이 있었지요. 당시 신용욱이 조종한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것을 보기 위해 1만여 명의 광주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 비행장이 민간 비행장으로 운영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총독부 체신국이 운영하게 됐고, 항공기의 운항에 필요한 기상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인근에 기상관측소가 세워졌는데 이것은 오늘날 광주지방기상청의 기원이 됐을 뿐 아니라 광주에서 근대기상관측의 효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신용욱이 만든 항공사를 중심으로 광주와 서울 간에는 일주일에 몇 차례씩 정기적으로 운항을 했다고 합니다. 항공기는 그리 크지 않았고 요즘처럼 실내 객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승객은 3~4명이 타는 정도였고 조종사들처럼 두터운 모자를 쓰고 자켓을 걸쳐야만 했지요. 그래서 승객은 많지 않았고 주로 항공기의 업무는 우편물을 수송하는 정도였습니다.

당시 전남 장흥 출신의 비행사인 이상태도 있습니다. 장흥신문에 실린 박형상 변호사의 글(2018.10.26.)에 따르면 덕천 이상태(李相,1904~1985). 우리나라 둘째 또는 세번째 비행사였다고 합니다.

"그 무렵 1903년생으로 장흥읍에는 '최상채,김두헌'이라는 공부 귀재들이, 강진읍에는 '김영랑,김현구'라는 시인 재목들이 있었는데, 회진 바닷가에서 1904년생 비행사가 나왔다니, 대단하다. 일본 지바(千葉)비행학교를 나왔으며, 1923년경 ‘지바~목포’ 방문운항에 성공을 하였고(장흥 하늘도 날았다한다), 몇 년 후 비행업무를 그만 두었는데, 집안 반대가 심했다한다. 해방 후 대한항공협회 이사와 전남지부장으로 일시 일했다고는 하나, 하늘에 남겨진 별다른 흔적은 없다. 오히려 고향 땅에 그 족적이 남았다. 1938년에 돌개포구 간척사업으로 조성한 순흥농장(상태농장) 경작지를 소작인들에게 헐값 분배하였다. ‘순흥농장 경작인 일동’ 명의로 1983년경에 ‘德川 이상태 시혜비’가 세워졌다. 그 시혜비 뒤편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상태 묘소가 있다. 지금의 선학동 세트장으로 가는 길목의 우측 모퉁이, 양지바른 언덕이다. 마지막으로 그 동생, ‘이상민’ 사연을 보태본다. 한창 젊었을 1942년경에 중국 해남도에서 격추되었다. 兄 대신에 하늘을 날던 민간비행사였지만, 군속 신분으로 동원되어 수송업무에 종사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생기면서 그런 징용업무에 앞장을 섰던 항공사 사장은 체포되고, 兄 이상태 역시 그를 처벌하라는 서명을 하였는데, 그 피의자 사장은 풀려나고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상무대 비행장이 민간비행장으로 이용된 기간은 오래가지는 않았어요. 1944년 일제는 이곳을 일본 해군에게 넘겼고, 특공特功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게 될 가미카제 조종사들을 속성으로 양성하는 곳으로 바뀌었지요. 상무대 비행장이 요카렌[豫科練](구 일본 해군의 소년 항공 요원 지망생)비행장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이 시기부터입니다.

한편 상무대 비행장에 주둔한 일본 해군 항공부대는 별도의 독립된 부대로 지칭되지는 않았지요. 이 부대는 10대도 채 되지 않는 훈련기를 보유한 소규모였던 탓에 일반적으로 광주항공대로 호칭됐습니다.

그러나 이 부대가 주둔하면서 길이 1000m의 활주로가 아스팔트 포장의 초기 시공형태인 매카덤 공법으로 닦였는데 활주로는 현재 전남고등학교 자리에서 상무소각장 방향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아울러 요카렌, 즉 비행연습생의 막사 등을 비롯한 부속시설들이 비행장 인근에 설치됐어요. 이로 인해 옛 국정원과 국군통합병원, 대신신학대 일대에 있었던 응세농도학원이나 호남대학교 쌍촌동 캠퍼스 자리에 있었던 임업시험장 등이 1944년을 기점으로 모두 일본해군 군용지로 징발당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상무대 비행장은 해방 후 다시 운영을 재개했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9년 이곳에서는 다시 여객기가 취향해 주로 서울을 왕복했어요. 당시 여객기는 2차 대전 중에 미군이 사용했던 군용기를 개조한 것으로 승객은 5명을 태우는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주와 항로가 열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광주-제주 항로는 승객 4명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 얼마 후에 운항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무대 비행장은 워낙 좁고 애초부터 민간공항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어서 결국 1964~65년께 비행장을 이설하기에 이르러 현재처럼 광주공항 자리인 광산구 신촌동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광주 비행의 역사는 광산구 신촌동에 있는 광주공항의 전신이 상무대안 비행장이었다. 그러나 1910년대에 일본해군이 세운 요카렌비행장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계속돼 왔으나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요카렌이란 용어는 1910년대에는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 사람들이 비행기를 목격한 것은 1910년대다. 1918년 일본인 조종사 야마카타 도요타로가 복엽기로 광주천(옛 도시제사공장 둔치)에 착륙할 때였다. 1920년대 중반에는 일본 육군 소속의 항공기 1대가 광주상공에서 방향을 잃고 동구 계림동에 있는 경양방죽을 활주로로 착각해 불시착하기도 했다.

<2019.5.1. 수정>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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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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