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묘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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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順禧 공을 기리는 추도문(誄詞)
채순희(蔡順禧, 1142?~1220?)
*아래의 글을 읽은 인공지능(AI)이 그린 채순희 공의 초상화
中書侍郞平章事大子少師蔡公誄詞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대장부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재상이란 높은 벼슬에 오르고, 일흔의 나이에 스스로 물러나 정신을 기르고 본성을 따르며 천수를 누리다가, 아름답고 온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꿈꾼다. 이러한 삶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매우 드문 일이다. 우리 대자소사(大子少師) 채공(蔡公)은 참으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아낸 인물이다.
공의 이름은 순희(順禧)이며, 광주(光州) 출신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관직에 올랐다고 한다. 공은 고려 의종(毅廟) 때 내정(內廷)에 등용되어, 명종이 왕위를 물려줄 때까지도 늘 곁에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며 보좌하였다.
어느 날, 임금(명종)이 수창궁(壽昌宮)에 머무르고 있던 중, 반역자 조원정(曹元正)과 석린(石麟) 등이 반란을 모의하였다. 그들은 밤을 틈타 담장을 넘어 궁궐 안으로 침입하였다. 그날 밤 궁궐을 지키던 근신들은 소란을 듣고 놀라 모두 담을 넘어 달아났지만, 공은 홀로 자침전(紫宸殿)으로 들어가 임금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시중을 들었다.
이에 임금은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거센 바람이 불어야 강한 풀이 드러난다 하였으니, 자네야말로 그 말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로다.”
그 후 공은 다섯 왕조에 걸쳐 벼슬길을 이어가며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지금의 임금(강종)이 재위한 어느 해에는 마침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와 대자소사(大子少師)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공은 스스로 물러나기를 청하고, 거문고와 술을 벗 삼아 세월을 한가롭게 보내며 은거하였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던 중,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매미가 허물을 벗듯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은 슬프면서도 영광스러운 것이었으며, 시작부터 끝까지 흠결 없는 삶이었다. 참으로 대장부라 할 만한 인물이다.
공의 성품은 너그러워 많은 사람을 품었고,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었다. 옛사람이 풀을 깔아 관리를 용서하고, 국을 쏟은 하인을 너그럽게 대했다는 고사조차, 공 앞에서는 더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조석(曹石)의 난리 속에서도 공은 위급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그 고결하고 굳센 지조는 이로써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는 어찌 ‘어진 자는 반드시 용감하다’는 말의 살아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부고를 들은 임금(고종)은 깊이 슬퍼하며 정사를 중단하였고, 관리들에게 명하여 명기(明器, 상장용 의기)와 노부(鹵簿, 장례 의장)를 모두 갖추도록 하였다. 공의 유해는 어느 산에 장사지냈으며, 시호를 내리고, 소신에게 명하여 생전의 행적을 모아 애도문을 짓게 하였다.
그 말은 이러하다.
왕을 보좌할 재능은
미리 하늘이 준비한 그릇이니
장차 드러날 우리 공은
그 기개부터 남달랐도다.
조석의 반란 때,
밤에 금문(禁門)을 쳐들어왔고,
내신들은 쥐처럼 숨고
담을 넘어 도망갔지만,
공은 홀로 임금 곁을 지켰고,
얼굴빛 하나 변치 않았네.
해가 지고서야 강한 소나무를 안다 했던가,
지조를 지킨 절개는 이로써 드러났도다.
그러한 절개가 있었으니
높고 영화로움은 당연한 일,
다섯 성군을 모셨고,
마침내는 중임의 자리에 올랐도다.
거센 물살에서 용감히 물러났으니,
명예는 온전하고 덕은 높았네.
하늘은 왜 이토록 무심한가,
나라의 기둥이 흔들리니.
임금의 마음 깊이 슬퍼하시고
예에 따라 모든 장례를 갖추셨네.
누가 그 아름다움을 전하랴.
소신이 감히 애도문을 짓노라.
夫大丈夫之生於世。官至宰相。七十得謝。頤神養性。克享天年。令終有俶者。求之古今。不可多得。我少師蔡公其有之。公諱順禧。系出光州。考諱某仕至某官。公毅廟時。籍內廷。至明宗禪位。猶不離近密。上嘗居壽昌宮。賊臣曹元正,石麟等謀爲不軌。夜踰垣而入禁中作亂。是夜內直近臣。聞難驚怖。皆越堞奔避。公獨入侍紫宸。無須臾去左右。上嘆曰。昔人有云疾風知勁草。子之謂矣。逮仕至五朝。歷踐華要。至今上某年。進位中書侍郞平章事大子少師。乞身退逸。逍遙琴酒之間。凡閱若干年。大期奄臻。蟬蛻而化。所謂哀榮終始。皆備而無缺。是可稱大丈夫者。性寬和容衆。未嘗見慍色。雖古之吐茵容吏翻羹恕婢者。其何以加之。然曹石之亂。有以見臨難不懼耿介特立之節。此豈仁者必有勇耶。訃聞。上哀悼輟聽政。勑有司備明器鹵簿。葬于某山。贈諡某公。申命小臣掇實以誄之。其詞曰。王佐之才。先卜以器。曁曁我公。負器固異。曹石搆亂。夜撞禁門。內臣鼠竄。越墻竝奔。公獨入衛。神色不移。後凋之節。歲寒乃知。有守如此。宜貴而榮。果相五聖。望峻台衡。急流勇退。名全德卲。天其不弔。國棟斯撓。宸衷軫悼。贈終禮備。孰揚厥美。小臣作誄。[東國李相國全集 卷第36 / 誄書]
채순희는 다섯 임금을 섬긴 고위 관료로서 충성심이 높았으며, 말년에는 은퇴 후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임금은 그의 사망에 깊은 슬픔을 표현하며 정중한 장례와 시호를 내렸다. 필자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대장부다”라고 평가하며, 그의 생애를 예로 삼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했다.
고려 의종(毅宗, 재위 1146~1170) 때 등용되었다면 1950년? 이전에 출생하였고, 다섯왕이면 의종 이후 명종(1170~1197), 신종(1197~1204), 희종(1204~1211), 강종(1211~1213)을 모셨으며, 고종(1213~1259) 때 일흔의 나이에 물러나 유유자적하였으므로 추정할 수 있는 생몰연도는 1142?~1220? 무렵으로 보인다.
[2025.5.25. 수정]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 저자(연도) | 제목 | 발행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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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동구청(2021) | 동구의 인물2 | 광주광역시 동구청 |
| 광주시남구역사문화인물간행위원회(2015) | 역사를 배우며 문화에 노닐다 | 광주남구문화원 |
| 광주남구문화원(2001) |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 광주남구문화원 |
| 광주남구문화원(2001) |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 광주남구문화원 |
| 광주남구문화원(2014) | 광주 남구 마을(동)지 | 광주남구문화원 |
| 광주남구문화원(2014) | 광주 남구 민속지 | 광주남구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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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동구문화원(2014) | 광주광역시 동구 마을문화총서 Ⅰ | 광주동구문화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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