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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륜(辛崙), 通訓大夫光州牧使辛公墓銘

광주목사 신륜 [光州牧使 辛崙]


辛崙(1504年 燕山君 10年~1565年 明宗 20年)은 朝鮮 前期의 文臣으로, 本貫은 靈山. 字는 景立이다. 奉翊大夫 典公判書를 歷任한 曲江 辛斯蕆의 後孫으로, 高祖는 郡事를 歷任한 辛劑이며, 曾祖는 節度使를 歷任한 辛俶晴이며, 할아버지는 黃州判官을 歷任한 辛秀武이며, 아버지는 參議를 歷任한 辛弼周이며, 어머니는 昌原黃氏이며, 夫人은 宣務郞을 歷任한 南廷召의 딸 宜寧南氏이다.


어려서부터 學文을 좋아하여 曺植과 交遊하였다. 1546年(明宗 1年) 增廣文科에 乙科로 及第, 成均館學正·博士를 거쳐 典籍에 오르고 다시 刑曹佐郎에 任用되었다. 1550年에는 慶尙道都事·春秋館記注官을 歷任하고, 1552年에는 咸鏡道都事로 任命되었으나 老母를 奉養하기 위하여 赴任하지 않았다. 뒤에 禮曹·工曹·刑曹의 正郎을 지내고 1563年 光州牧使가 되었으나 어머니의 奉養을 위하여 官職을 抛棄하고 돌아와 孝道를 다하였다. 向陽祠에 祭享되었다.


辛崙의 墓碣銘을 紹介한다. 1567年(明宗 22年)에 세워진 辛崙의 墓碣의 碑文은 神明舍圖, 破閑雜記 等을 著述한 學者이며 親舊인 文貞公 南冥 曺植이 撰述하였고, 글씨는 朝鮮 前期 第4代 世宗의 셋째 아들로 王子이며 書藝家인 匪懈堂 安平大君의 글자를 모아서 새겼다. 碑文의 初盤部에는 辛崙의 家系圖에 대해 적혀 있으며 中盤部에는 官職生活과 行蹟이, 後半部에는 家族과 子孫의 事項이 적혀 있다.


신륜 묘갈 [辛崙 墓碣]


有明朝鮮國通訓大夫光州牧使辛公墓銘 幷序

友人 南冥 曺植 撰


辛氏系出靈山爲東國石宗猶尹姞於周也公諱崙字景立玄祖諱斯蕆仕高麗爲典工判書高祖諱劑爲郡事娶宗簿寺正鄭仁慈之女生節度使俶晴是公之曾王父也郡事當麗季賊旽慕其名欲托以同宗怵以禍福竟不屈祖諱秀武爲黃州判官考諱弼周爲參議娶昌原黃氏生公參議公中弘治丙辰進士燕山政亂遂廢擧子業至正德丁卯中中廟朝文科有文武長才顯敭中外者四十餘年公少好文甫十五歲中進士鄕選嘉靖丙午登第辛氏世樹家聲藍田生美玉固也始調授成均館學諭學正博士陞典籍遷刑曹佐郞伸寃撥伏曹吏逮事參議公之爲正郞者稱之爲淑問如正郞庚戌年授慶尙道都事兼春秋館記注官是年十月丁內虞哀毁踰禮躬執奠饌定省慈圍不入燕室壬子年除咸鏡道都事以母夫人之遠不就遷禮工刑曹正郞爲養乞醴泉郡又乞爲寧海府使癸亥秋又乞爲光州牧使母夫人以年老不任登道遂棄官歸養躬自滫瀡乙丑五月以疾終于家享年六十二娶宣務郞南廷召之女廷召娶竹溪節婦府使安璋之女生夫人是生二子曰汝謹汝誠女嫁司成陳瓘子裕慶汝謹娶生員郭之元女生一男曰膂女幼汝誠娶經歷張世沈女生一男曰胤公狀貌魁峨質性醇尨事親孝理民和應事以實接物以誠言不美華行無虛僞鄕里稱其孝位不稱器爲人所惜夫人端雅有婦規先公十年卒汝謹以植有分於先公且以爲不諛來乞銘 銘曰


馬浦之北 靈鷲有神 周楨之降 其辛維申 簪纓苽瓞 非勃其起 仁者之壽於參議 仁者之不 壽唯牧使 賢勞之獨 三已其位 敬色之勤 累朱其轓 惟鄕國有臣 惟玄考有昆 而曾參莫養 而黃媼抱孫 皐景立 不瞑爾目 何以樹之 雙白其玉 君之淵兮子之山 徯我侯兮天送之 後千香絶 石乎在玆


隆慶元年丁卯十二月十七日

安平大君 書字


륜 묘갈 해설


유명조선국 통훈대부 광주목사 신공묘명: 서문(序文)을 아울러 쓰다.

친구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글을 짓다.


신씨(辛氏)는 세계가 영산(靈山)에서 나왔으니 우리나라의 이름난 집안으로 주(周)나라의 윤씨(尹氏), 길씨(姞氏)와 마찬가지이다. 공의 이름은 륜(崙)이고 자는 경립(景立)이다. 현조부의 이름은 사천(斯蕆)이니 고려에 벼슬하여 전공판서를 지냈다. 고조부의 이름은 제(劑)이고 군사(郡事)를 지냈는데 종부시정 정인자의 따님을 맞이하여 절도사 숙청(俶晴)을 낳았으니 이분이 공의 증조부이다. 군사는 고려말년에 역적 신돈(辛旽)이 그 명성을 흠모하고 같은 집안이라 핑계하여 화복(禍福)으로 유혹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굽히지 않았다. 조부 수무(秀武)는 황주판관을 지냈고 부친 필주(弼周)는 참의를 지냈는데 창원황씨(昌原黃氏)를 맞아들여 공을 낳았다. 참의공은 홍치 병진년(1496, 연산군 2)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연산군 때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마침내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다가 정덕 정묘년(1507, 중종 2)에 이르러 중종 때의 문과에 합격하였다. 문무에 큰 재주가 있어 내외에 이름을 드날린 것이 40여 년이나 되었다. 공은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겨우 15세에 진사시험의 향시에 합격하였고 가정 병오년(1546, 명종 1))에 급제하였다. 신씨는 대대로 가문의 명성을 세웠으니 남전(藍田: 섬서성에 있는 옥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좋은 집안에서 말한다)에서 옥(玉: 훌륭한 자손)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 선발되어 성균관 학유, 학정, 박사에 제수되었다가 전적으로 승진하였다. 형조좌랑에 옮겨서는 원통함을 풀어주고 숨은 죄를 다스리니 형조의 서리 중 참의공이 정랑으로 계실 때 섬기던 사람들이 공을 칭송하여 숙문(淑問: 송사를 잘 다스리는 것)하는 것이 정랑과 같다고 하였다. 경술년(1550)에 경상도도사 겸 춘추관기주관에 제수되었는데 그해 10월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예법에 지나치도록 슬퍼하여 몸을 상할 지경이었지만 몸소 제물을 준비하였고 밤낮으로 어머니를 보살폈으며 내실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임자년(1552, 명종 7)에 함경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어머니와 멀리 있게 된다고 부임하지 않았다. 예조·공조·형조의 정랑으로 옮겼으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예천군수의 자리를 청하였고 다시 청하여 영해부사가 되었다. 계해년(1563) 가을에 또 청하여 광주목사가 되었는데 어머니가 연로하여 길에 오를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돌아가 모셨는데 몸소 음식을 만들어 봉양하였다. 을축년(1565, 명종 20) 5월 병으로 집에서 별세하니 향년 62세였다. 선무랑(宣務郞) 남정소(南廷召)의 딸에게 장가갔는데 정소는 죽계(竹溪: 순흥을 말함)의 절부(節婦), 부사 안장(安璋)의 딸에게 장가가서 부인을 낳았다. 부인이 아들 둘을 낳으니 여근(汝謹)과 여성(汝誠)이고 딸은 사성 진관(陳瓘)의 아들 유경(裕慶)에게 시집갔다. 여근은 생원 곽지원(郭之元)의 딸을 맞아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려(膂)라 하고 딸은 어리다. 여성은 경력 장세침(張世沈)의 딸을 맞아 아들 하나를 낳았으니 윤(胤)이라고 한다. 공은 용모가 장대하였고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독실하였다. 어버이를 효로 섬기고 백성들을 화목하게 다스렸다. 일은 진실되게 응하고 남을 성심으로 대하였으며 말은 화려하지 않고 행동에는 거짓이 없었다. 고을 사람들이 그 효성을 칭찬하였으나 지위가 기량에 걸맞지 않아서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부인은 단아하고 부녀자의 법도가 있었으나 공보다 10년 먼저 별세하였다. 여근(汝謹)은 내가 돌아가신 부친과 교분이 있고 또한 아첨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와서 명을 청하였다. 명하노니,


마포의 북쪽에 영취산(靈鷲山)이 신령스러워서

나라의 동량을 내려주니 신씨(辛氏)에게 이르렀구나

훌륭한 벼슬, 자손이 번창하니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로다.

어진 사람으로 오래 산 분은 참의공이고 어질지만

오래 살지 못한 사람은 오직 공이라네

현명하여 남달리 수고하였으며

세 번이나 그 자리를 그만두었구나.

공경하는 기색으로 부지런하여

붉은 깃발달린 지방관의 수레를 타니

나라에는 훌륭한 신하요,

조상에게는 훌륭한 후손이라네

다만 증자처럼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하고

늙은 어머니에게 손자를 맡겼으니

그대를 부름에 눈 감지 못하리.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한 쌍의 흰 옥이라.

임금의 못은 그대에게 산이니

우리 수령을 기다리자 하늘이 보내주시네.

천년 후에 향기 끊어져도

비석은 여기에 있으리라.


융경 원년 정묘년(1567, 명종 22) 12월 17일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씨를 모았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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