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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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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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지도 속 서구는 어떻게 생겼나

언젠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도에 목숨 걸고 지도 때문에 딸도 잃는 일들이 벌어진다. 지도는 문물이 소통하며 사람이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위성지도나 내비게이션 등으로 길 찾는 일이 쉬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지도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지도는 삼국시대 때부터 그려진다. 하지만 광주를 그린 지도는 조선시대 것만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 광주를 그린 지도는 대략 40여 점이 알려져 있다. 서구만을 따로 그린 지도가 없지만 광주 지도 속에서 서구의 옛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40여 점의 광주 지도 중 옛 마을 이름을 많이 기록한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방지도 속 광주지도를 통해 당시 서구 지역의 옛 마을을 살펴본다. 지금과는 위치도 다르고 명칭도 달라졌지만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지역을 적었다는 점에서 오차가 있음은 물론이다.

1872년 발행된 규장각 지방지도 속 광주는 무등산 서석대 입석대를 조각처럼 표현한 가장 아름다운 지도다. 다른 지도는 북쪽이 상단인데 비해 광주는 남쪽이 지도의 상단인 점도 남다르다. 진산인 무등산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광주읍성의 성벽은 성가퀴를 단 정사각형으로, 네 방향의 성문에는 각기 고유의 이름도 그려져 있다. 동쪽 성문은 서원문瑞元門, 서쪽 성문은 광리문光利門, 남쪽 성문은 진남문鎭南門, 북쪽 성문은 공북문拱北門이 그것이다.

1872년 지방지도를 중심으로 보면 오늘날 서구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으로는 군분면, 내정면, 당부면, 덕산면이 대부분이며 공수방면, 도천면, 방하면, 선도면, 황계면은 일부 지역이 서구에 포함된다


규장각 '지방지도' 속 서구의 마을들


군분면(軍盆面)은 택동, 내동, 쌍류 마을이 표시되어 있다. 오늘날 광천동, 치평동, 상무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이다. 지금까지 모든 기록에는 군분면의 자는 동이 분()’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풍수지리적 의미를 담아 해석하기를 비행장이 있고 상무대가 있었던 군사가 있는 지역이라는 당위성을 설명한다.

* 1918년 일본의 천재 비행사 야마가타(山縣豊太朗)가 광주에 비행기를 몰고 와 착륙했다. 그 때 광주 사람들이 받은 놀라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합방 직후에 현재 상무지구가 들어선 광주군 군분면 쌍촌리에는 이른바 요카렌 해군 비행장이 건설됐다. 요카렌은 예과련(豫科練)의 일본 발음으로 일종의 비행조종사 견습과정을 의미했다. 그 뒤 상무지구는 오랫동안 광주 지역의 거의 유일한 비행장이었다. 한편 1920년대까지 비행은 대개 모험가들의 몫이었다. 장흥군 출신의 이상태(李商泰)19242월 광주 상공에서 펼쳐진 이상태의 비행시범에는 3만명이 몰려들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행은 점차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85월 광주 땅에 내린 창공의 특급열차인 신용욱의 4인승 여객기 주변에는 물경 10만여 인파가 몰려들었다. 물론 당시의 항공여행이란 지금과는 퍽 달랐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오는 데 네다섯 시간이 걸렸고 비행기엔 조종사를 합해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승객만이 탔다. 그래도 당시 최고의 특급열차보다 거의 1.5배나 빠른 속도였고 이 때문에 신문들은 홍길동 얘기에나 나오는 축지법이 실현됐다는 듯이 떠들어대곤 했다.

이 지도를 유심히 보면 향기 분()’으로 적혀 있다. 예전에 쌍촌동 화정동 일대가 도시 외곽지역이었고 꽃밭이 많았다는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곁들어보면 이해되는 부분이다. 화담사(花潭祠)가 이 지역에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당부면(當夫面)이 군분면 바로 왼쪽 위에 있다. 벽진, 마륵, 풍암, 북촌 마을 등이 표기되어 있다. 오늘날 서창동, 금호동, 풍암동 일대이다. 서창동은 세하동, 용두동, 서창동, 벽진동, 마륵동, 매월동 등 6개동을 거느린 행정동명으로 오늘날 서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광활한 지역이다. 1872년 지방지도 속 광주지도에는 풍암을 제외하고는 금호동과 풍암동의 옛 마을 이름인 심곡, 만호, 금부, 망월, 운리 등 자연마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 기록으로는 의병장 김원국(1873)과 김원범(1876)이 당부면 북촌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59월 광주군 송정읍 시장에서 일본 군인을 죽이고 피신했다가, 19063월 동생 원범과 함께 광주 무등촌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1909125일 영광 불갑산으로 이동하다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된 뒤 1910년 대구감옥에서 총살을 당하였다. 김원범도 무등산전투에서 붙잡혔는데, 광주에서 취조를 받던 중 혀를 물어 끊고 자결하였다. 김원국 의병장 손자인 김복현씨는 할아버지 생가는 광산군(지금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리 134라고 말한다. 다른 문헌에는 광주시 당부면 북촌리로 이는 할아버지가 왜놈 순사에게 취조중 가명과 거짓 주소를 말한 게 계속 전해온 탓으로 여겨진다. 그 생가 터는 일본군에게 몰수되어 비행장으로 사용돼 오다가 현재는 5·18 공원이 조성된 곳이다.


이 지도는 또 당부면()’마을 부()’로 표기하고 있다. 당부면 지역이 주로 평야지대에서 곡식을 많이 생산하고 유동인구도 많았던 큰마을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글자라 할 것이다. 특히 마륵에는 검바웃들, 깜박들, 모래대, 모랭이, 조푼들 등의 들판이 있었다. 모래대는 현재 비행장으로 변하였다.

이 지도에서 풍암은 영산강 건너편에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 오늘날 풍암동 지역과는 맞지 않다. 벽진도 멀리 위쪽으로 떨어져 있다. 지도를 그리는 과정에서 주변 지역과의 관계, 다른 지도를 참고하는 과정에서 왕왕 벌어지는 일이다.

도천면(陶川面)은 군분면 아래쪽에 있는데 군분면 풍암과 염주마을과는 한참 떨어진 지역으로 표기되었다. 도천면에는 오늘날 봉선동 일대 조봉은 조봉초등학교가 지역명을 유지하고 있고 월산은 월산동 지역이다.

* '광주읍지''충신전'에는 총 14분의 충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던 고경명과 김덕령, 그리고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순절한 전상의 장군만이 나라로부터 충신의 정려를 받고 있다. 이 세 사람만이 충신의 정려를 받았기 때문에 광주의 3충신으로 불린다. 3충신 중 전상의(全尙毅, 1575~1627)는 고경명, 김덕령에 비해 너무도 생소한 인물이다. 그는 선조 8(1575), 광주군 도천면(현 광주광역시 구동)에서 태어난다.

1985년 광주 무등산 자락에 충민사가 준공되어 단독 배향된다. 그의 순절한 지 358년이 지난 후였다. 충민사는 준공 이후에도 전두환과 관련된 오해에 시달린다. 전상의 장군과 광주 518 학살의 주범 전두환과는 전씨라는 성만 같을 뿐 파가 달랐고, 아무런 관련도 없었지만 건립 시점이 문제였다. 지금 충민사에는 앞면 4칸 옆면 2칸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활과 칼 등 장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유물관, 그리고 충신정려를 명한 현판을 보관하고 있는 정려각 등이 있다.

구한말에는 광주군 도천면(陶泉面) 옹정리(翁井里), 이선리, 용정리(龍井里), 조봉리(朝鳳里), 불노리, 신기리(新基里)가 있어 191441일 도천면과 부동 방면의 방림 일부, 유안, 운용리가 합쳐져 효천면 봉선리가 되어 처음으로 봉선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이후 193541일 광주군 효천면과 지한면(池漢面)이 합병되어 孝池面 鳳仙里가 되었고, 195571일 광주시역의 확장에 따라 광산군 효지면이 광주시에 편입되면서 광주시 봉선동이 되어 공식적으로 봉선동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방하면(方下面)은 당부면과 극락교를 사이에 두고 있다. 창삼촌, 사동 마을과 대촌, 송정리 등이 보인다. 대촌, 송정리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서창동, 용두동 일대로 생각된다. 특히 방하면에서 서창이라는 창고가 있는 데 이 지역의 세곡을 모아 중앙정부에 바치는 역할을 했다.

* 조선 초 광주는 세곡의 중간집하장인 나주의 영산창까지 세곡을 운송했다. 그 출항지가 바로 지금의 서창동 산4번지 서창이었다. 말 그대로 광주의 서쪽에 있는 창고, 그 창고를 끼고 번창하던 포구 마을이었다. 서창나루가 영산강 하류지역과 뱃길을 연결하는 포구였다는 적극적인 증거는 많지 않다. 대체로 현존하는 기록이나 구전은 서창이 나루터였음을 더 보여준다. 서창엔 세곡이나 물건들만 모여드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발길도 붐볐다. 이곳에 광주와 나주를 오가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곳 나루는 나주 북문거리(현재의 나주시 노안면과 광산구 평동 일대)와 광주 서문거리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동국문헌비고(1770)에는 서창장의 장날이 5일과 10일이라고 했다. 그 때만 해도 광주 읍내 사람들이 소금이나 어물을 사려면 대개 이곳에 와서 장을 봤다. 서창나루 마지막 뱃사공은 박호련으로 알려져 있다.

  

군분면 오른쪽의 덕산면(德山面)은 신기리와 동작, 서작이 보인다. 오늘날 유덕동 일대이다. 유덕동은 유촌동과 덕흥동을 거느린 행정동명이다. 그리고 더 오른쪽의 내정면은 하촌, 하신촌, 다채태 등이 보인다. 오늘날 치평동과 유덕동 일대이다.

* 남쪽 덕산(德山·35m) 기슭이 덕흥동(德興洞)이다. 극락강과 광주천 사이 범람원 가운데 면적 6ha에 달하는 덕산이 있다. 주민들은 평야에 있는 덕산의 형국을 호랑이로 보고 있다. 세봉우리로 남동쪽이 머리고, 북서쪽이 꼬리다. 풍영정 칠개(漆川)가 덕뫼에 부딪치니 그 밑이 덕호(德湖). 벼랑에 1937년 지은 나주 오씨 제각 덕호재가 있다. 맑은 물과 함께 백사장도 펼쳐졌으니 물놀이욕장과 화전놀이터가 됐다. 극락강역에서 줄나룻배나, 9번 버스를 타고 온 시내학생들의 소풍터로도 유명했다. 오늘날 송산유원지와 버금간 곳이다.

덕산은 나주오·남평문씨가 많이 살고 있다. 처음 청주한씨가 들어온 뒤, 선조 때 평동에서 나주오씨 와헌공(臥軒公) 이수(以壽)가 입촌한다. 이후 남평문·수원백씨가 이사 오면서 동작, 서작, 가운데뜸이 형성되었다. 열두 당산을 모신 300호 대촌으로 마을 샘이 여섯 곳에 있었다. 454번지에는 높이 22m 둘레 5.3m 크기의 수령 400년 느티나무가 서 있다. 동작의 상당으로 할머니다. 근처에서 길이 10.2, 너비 2.3크기의 세형동검이 나왔다. 서작의 상당은 팽나무로 할아버지다. 공통으로 소신을 모신 우당산도 있었다. 극락강변 벼랑에는 김덕령 전설이 깃든 손·치마바위와 함께 상무대 급수장터도 있다. 옛 배후습지에는 정구렁이란 땅이름도 남아있다.


내정면 위의 황계면(黃界面)은 대자리와 대동, 죽림 등이 있는 데 대자리 일부가 광천동에 포함된다. 나머지는 북구 운암동과 동림동이다.

* 황계면(黃鷄面) 일대는 운암산(131m)과 대마산(92m)으로 이어지는 진등서편에 해당된다. 대마산(大馬山)은 서구 동천동 죽림마을 서남쪽에 위치한 산이다(고도92m)). 운암산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져 광주천과 들판으로 이어져 있다. 여지도서에 왕조대(王祖臺)관아 서쪽 30리로 견훤대(甄萱臺)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고려 태조가 견훤을 징벌할 때 군진(軍陣)을 친 곳이다. 백성들이 무지하여 왕건대라 불렀으나, 태조의 성씨를 피해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훤대를 건국동 관할 생룡동 뒷산 죽취(대포리)봉으로 보는 설과 함께 대마산(大馬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여지도서에 방목평(放牧坪)은 견훤대 아래로 견훤이 진을 치고, 말을 기르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견훤대와 군마를 기른 곳이라 해서 대마산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은 채석을 하여 석산(石山)’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남쪽으로 경전선 철도가 지나고 있다. 서강고등학교 남쪽에 운암(북광주)역이 있었고, 1940년대 운모 채굴과 그 운반을 위해 건설된 것이다. 1980년대까지 극락강 유역의 농토를 일구며 살아가는 근교 농촌이었으나, 1990년부터 도시화된 곳이다. 조선시대 광주목 황계면(黃黃界面)에 속했고, 배곡·죽림촌·대내동(안짝대자리(황계율곡촌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내정면 아래쪽의 공수방면(公須坊面)에 교촌, 상하촌, 천변리 등이 있다. 지금의 양동이 있었고 이곳 산기슭에 덕림마을이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는 석현石峴(돌고개), 못등, 샘 마을이 있었다. 지금의 동구 충장동과 남구 월산동과 백운동이 이 지역에 속한다.

*1910930일 조선총독부는 새로운 지방제도에 따라 광주에 읍장을 두었다. 광주 성벽 안을 성내면이라 부르고 성밖을 기례방(奇禮坊:현재의 대인동 일대), 공수방(公須坊:현재의 수기동 일대), 부동방(不動坊:현재의 삼성동 일대)이라 하여 13방을 합병하여 1911년 광주면이라 했다. 공수방은 관청의 필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많았다. 공수전(公須田)은 본래 중앙에서 지방으로 나가는 관리의 숙박, 접대 등에 드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주()에 나누어진 토지이다. 일제 초기부터 주단 포목 모자 문구 등 각종 잡화도매상이 모여 성시를 이룬 곳이다. 광주의 향토사학자 박선홍 선생의 '광주1백년'을 보면 옛 현대극장 주변의 큰 장을 공수방(公須坊)이라 했고, 현 부동교 근처의 백사장에 열리는 작은 장은 부동방(不動坊)이고 했다.


선도면(船道面)은 개산, 회산, 세동, 화개 마을이 있는데 오늘날 매월동과 세하동이다. 일부는 남구 송암동이다. 그런데 지도상에서는 아주 엉뚱한 곳에 있다. 장성 경계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세동(細洞)이다. 그동안 김세근 장군과 연계시켜 세동(世洞)’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었지만 지도로 보면 아닌 것 같다.

* 선도면은 나주의 관할이었다. 화재 박광옥이 개산송당을 지었는데 매월동에 속한다. 조선 명종(明宗) 때 박광옥(朴光玉)이 전라도 나주(羅州) 선도면(船道面)에 지은 집의 당호(堂號)로 이곳에서 문하생들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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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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