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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도지휘사의 자문 내용을 논하다 - 선조 27년

대신과 비변사 당상, 양사, 옥당 등과 요동 도지휘사의 자문 내용을 논하다 - 선조 27년 갑오(1594) 7월 16일(임진)       


상이 대신과 비변사 당상, 양사, 옥당을 인견하고 【영중추부사 심수경(沈守慶), 판중추부사 정곤수(鄭崑壽), 호조 판서 김명원(金命元), 이조 판서 김응남(金應南), 지중추부사 김수(金睟), 병조 판서 심충겸(沈忠謙), 호조 참판 성영(成泳), 병조 참판 강신(姜紳), 동부승지 이수광(李晬光), 지평 이경함(李慶涵), 수찬 정엽(鄭曄), 정언 김용(金涌)이 입시하였다.】 이르기를,
“오늘 온 자문(咨文)은 작은 일이 아니다. 경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봉공의 일은 이미 취소가 되었고 유정(劉綎)이 거느린 병사 5천에다 3천 병력을 추가하여 본국의 왕이 처리하게 하였으니 어떻게 조치할 것인가?”
하니, 김명원이 아뢰기를,
“일찍이 중원(中原) 사람을 만났을 때 대다수가 ‘조선은 반드시 지켜야 할 나라이다.’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이런 말이 있었나 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의 정탐은 아무리 먼 데라도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미 봉공을 거절한다는 성지(聖旨)를 받았으니 이 일은 적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적은 반드시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독기를 부릴 것이다.”
하니, 김명원이 아뢰기를,
“적은 중원(中原)이 필시 소서비(小西飛)를 죽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서비의 졸개가 이미 내려갔으니 반드시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소서비가 만약 화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면 반드시 그들에게 알릴 것이고 또 적이 정탐할 것은 분명하다. 고 총독이 갈리고 손 시랑이 와서 교대한 일을 적이 이미 말했을 것이다. 손 시랑이 적을 칠 것인가, 방수(防守)할 것인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그의 뜻은 싸우기에는 부족하고 지키는 것은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이 만약 대거 돌격해오면 수천의 병마로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김명원은 아뢰기를,
“즉시 철병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입니다만 끝내 지탱해낼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1만 2천의 병력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하니, 김수와 김응남이 아뢰기를,
“군사는 남쪽에 있는 자를 조달해 낼 수 있을 것이나 군량은 가장 조치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심충겸은 아뢰기를,
“요즘 보면 자문(咨文)을 삭제하고 고치는 일이 지나칩니다. 비록 주상 앞에서 의정(議定)하였더라도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고쳐서 아예 본질이 없어집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존망은 이 자문의 회답에 달렸다.”
하였다. 심충겸이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 이 자문의 회답에는 그 대책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적의 형세가 점차 전과 같지 않으니 만약 중국이 군대를 출동하여 친다면 섬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음으로 요해처를 방수(防守)하는 것이 좋으나 우리 나라는 비용을 지탱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이어 회유의 계책을 써서 적이 바다를 건너 가게 해야 한다는 등의 뜻으로 글을 지어 채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의 유사 당상(有司堂上)을 보내 이 자문을 가지고 영상(領相)을 찾아가 보여서 내용을 알도록 하라. 그리고 일을 반드시 빨리 처리해야 한다. 판서(判書)가 ‘항상 자문을 고친다.’고 한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지금 우선 회유하는 계책으로 요청하고 한편으로는 방수하면서 천천히 계획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지금 모조리 섬멸한다면 나중에는 이런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진주하고 이어 양향(糧餉)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사사신(司使臣)은 우리 나라를 방수하자는 의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사사신의 장주(章奏)를 보니 우리 나라를 위하는 말이 매우 많았다.”
하였다.
성영이 아뢰기를,
“삼가 전라 감사(全羅監司) 홍세공(洪世恭)의 장계를 보니, 토적(土賊)이 매우 성하여 이루 다 주벌(誅罰)할 수 없겠습니다. 만약 그들의 살 길을 열어 주면 교화되어 착한 백성이 될 것이니, 고부 군수(古阜郡守)를 유능한 자로 철저히 가려 차송하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토적이 옥(獄)을 습격하였다는 소식은 참으로 한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이 들은 것을 말해 보라.”
하니, 성영이 아뢰기를,
“토적이 관가에서 5리길 밖의 민가에 전령(傳令)하여 곡식을 보내게 하였다고 하니 매우 두렵습니다. 그리고 수령은 하리(下吏)가 그 일을 전파할까 염려하여 감사에게 보고하지 않아 소탕할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이 때문에 더욱 세력이 불어난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식량이 준비되고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니 추수한 뒤에 반드시 대책을 세워 식량을 계속 이을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또 들으니 부민(富民) 중에 곡식을 쌓아둔 자가 있다고 한다. 적이 만약 분탕질을 하면 그들은 필시 그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그들에게 상을 주어 바치게 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성영이 아뢰기를,
“강신(姜紳)이 와서 하는 말이 ‘외방은 3년 간의 병화(兵火)로 농사를 짓지 못하여 비록 오래된 부민이라도 스스로 보존할 수 없을 정도이고, 또 부민은 결복(結卜)이 많기 때문에 요역(徭役)의 번잡함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은자(銀子) 4백 냥을 요동 중강(中江)에 보내 곡식을 사들이려고 하는데 다만 은자가 매우 적으니 호조의 은냥을 더 보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반드시 여러 방면으로 헤아려 많이 저축할 수 있도록 하라.”
하니, 성영이 아뢰기를,
“곡식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항상 가설관(加設官)을 제수하니 이 때문에 바치려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쓸 만한 사람이 있으면 실직(實職)으로 올려 보임하는 것이 무방하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조 판서가 이곳에 있으니 마땅히 의논하여 조처하라.”
하였다. 심충겸이 아뢰기를,
“1백 석의 곡식을 바치고 실관(實官)이 되고 싶어하는 자는 근래 도하(都下)에 매우 많이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곡식을 바친 사람은 임용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심수경이 아뢰기를,
“대간이 논박하더라도 이조(吏曹)는 의당 임용해야 합니다.”
하고, 김응남은 아뢰기를,
“모두가 곡식을 바쳤다고 하여 그들을 천하게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삼한 갑족(三韓甲族) 중에 능히 왜적을 찌른 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자, 정곤수가 아뢰기를,
“국가에서 사족(士族)을 매우 후하게 대우해 주었기 때문에 사족 가운데는 적에게 붙은 자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군사에게 지급할 군량이 매우 어렵다. 만약 수로(水路)를 통하여 온다면 좋을 것이니 그대로 전라도로 가서 적을 칠 수가 있다. 수(隋)나라가 우리 나라에 용병(用兵)할 때와 소정방(蘇定方)이 나올 때에도 다 수로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하니, 강신이 아뢰기를,
“이제 경상 감사의 장계를 보니 ‘투항한 왜를 조처하는 일은 예기치 못한 일이 많이 있다. 김응서(金應瑞)의 진중에서는 하마터면 변이 생길 뻔하였는데, 그것은 응서가 전투에 사용하려고 왜인이 차고 있던 칼을 회수하자 왜가 칼을 뽑아 찌르려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군관(軍官)이 잘못 전령한 것으로 사과하고 마침내 군관을 치죄하여 왜인의 마음을 안심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빨리 조처해야 합니다. 경성의 인심이 이 때문에 더욱 소동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군대 3천 명이 나오면 군량을 어떻게 지공(支供)할 것인가? 그리고 유 총병은 대구(大丘)에서 진영을 옮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그것은 왜적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현재 팔도의 재정이 탕갈되어 완전한 고을이 거의 없는데 오늘날 민폐가 많은 것은 바로 삼전(三殿)이 각기 다른 곳에 있으므로 종관(從官)의 지공(支供)으로 인한 폐단이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궁(東宮)은 민정을 무순(撫循)하고 폐단을 제거하여 호서(湖西)의 백성들이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주가(駐駕)한 지가 오래 되었으니 배신(陪臣)과 종관이 어찌 폐단을 끼치는 일이 없겠습니까. 삼전이 각기 따로 있는 것은 매우 온편치 않아 뜬소문이 크게 전파되므로 도하가 놀라 술렁거려 장차 괴멸하게 되었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반드시 사생 존망(死生存亡)을 종사 신민(宗社臣民)과 함께 하겠다는 뜻으로 아래 백성들에게 두루 하유하여 인심을 굳게 결속시킨 다음에야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하의 백성이 이러하고 먼 지방이 이러한데 변보(邊報)가 한번 이르면 인심이 풀리고 흩어져 아무리 훌륭한 장수가 있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 호종했던 여러 신하들의 처자(妻子)에게 급료(給料)하게 하신 것은 성상의 은택이 지극하니 그 누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의리에 죽은 신하는 이미 국사 때문에 죽었는데 그 처자는 굶주려 구학(溝壑)에 쓰러진다면 너무도 불쌍하니 명하여 휼전(恤典)을 베풀어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상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이수광이 아뢰기를,
“고경명(高敬命)의 처자는 거의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김수는 아뢰기를,
“조헌(趙憲)과 김천일(金千鎰)의 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시행하게 하되 이 사람들뿐 아니라 전쟁에 나간 사람의 부모와 처자도 급료해야 한다. 해사가 만약 잘 살피지 못하면 국가의 은택이 도리어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선전관(宣傳官)이 고언백(高彦伯)의 처소에서 와서 하는 말이 ‘언백이 「나는 의당 국사에 죽을 것이지만 고향에 계신 노모(老母)는 장차 굶어 죽을 것이다.」 했다.’ 하였다. 이 사람도 제급(題給)해야 한다.”
하자, 김수가 아뢰기를,
“비록 제급을 하게 하더라도 본관(本官)이 그가 공생(貢生)이라 하여 제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명(敬命)은 어느 지방 사람인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광주(光州) 사람입니다. 그의 처자도 그곳에 있습니다.”
하고, 정곤수는 아뢰기를,
“심대(沈岱)의 처자도 연산(連山)에 있으면서 굶주리고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는 일체 행이(行移)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22 집 312 면
【분류】 재정-상공(上供) / 재정-국용(國用) / 왕실-국왕(國王) / 군사-전쟁(戰爭) / 군사-통신(通信)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법-치안(治安) / 인사-관리(管理)


[주-D001] 결복(結卜) : 
토지의 단위면적.
[주-D002] 삼전(三殿) : 
왕ㆍ왕비ㆍ세자를 말함.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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