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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세와 군사의 일에 대해 의논하다 - 중종 6년

김수동 등과 중국의 정세와 군사의 일에 대해 의논하다 - 중종 6년 신미(1511) 12월 6일(임오)

김수동이 아뢰기를,
“요즈음 산동(山東)에 난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그러하다면 중원(中原)과 길이 통하지 않을 것이며, 또 산동은 우리 나라와 매우 밀접(密接)해 있으니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성희안이 아뢰기를,
“산동은 북경과 가까운데 통사(通事)에게 물으니, 산동은 의주(宜州) 땅으로 영평부(永平府)에서 산동까지의 거리는 10여 일 노정(路程)이라 합니다. 산동의 적(賊)을 오랫동안 평정하지 못하면 산해관(山海關)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고, 여기에 10만 병력이 있어 산해관을 지킨다면, 불러들이고 물리치는 것이 모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또 삼위 달자(三衛㺚子)가 모두 요동(遼東) 근처에 있고, 해서 달자(海西㺚子)도 병력을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이 산동을 점령해서 우리 나라에 사신을 보낸다면 반드시 우리 나라를 신하로서 복종시키려 할 것이니, 우리 나라는 방비를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마땅히 미리 조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3백여 명을 거느리고 강을 의지해서 방수(防戍)하도록 한다면, 대장은 의주에 있으면서 처치해야 할 것인데, 군량은 5천 석뿐이라 매우 적으니 넉넉한 고을에서 미리 저축하여 대비해야 합니다.”
하고, 김수동은 아뢰기를,
“전쟁[兵事]이 없더라도 안주(安州) 등처에는 군량(軍糧)을 미리 준비함이 마땅합니다.”
하고, 성희안은 아뢰기를,
“안주의 군량이 8만여 석인데 쌀로 계산하면 2만 3백여 석이며, 영변(寧邊)의 곡식은 겨우 2만 30여 석이니, 이런 수량으로 어떻게 일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안주의 청천강(淸川江) 건너편은 천연의 요새로 안주를 잃는다 하더라도 대군이 영변에 있다면 보전하는 데 걱정이 없으니, 이는 조종(祖宗)의 뜻이었습니다. 안주의 곡식을 수로(水路)로 운수할 수 있으니, 해사로 하여금 마련하도록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산동에 과연 변이 있고 근래에 양계(兩界)가 허술하니, 평안도엔 유고(諭告)를 내려야 하겠지만 해조(該曹) 또한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하자, 성희안이 아뢰기를,
“황주(黃州)는 황해도 관방(關防)의 첫 관문이며 극성(棘城)도 있으므로 목사(牧使)를 모두 무사로 차견(差遣)하였습니다. 지금 서극철(徐克哲)이 목사인데 서극철은 보잘것없는 선비인데다 병이 있을 뿐 아니라 부평(富平)에서 체직된 지 오래지 않은데 곧 황주로 차견함은 매우 불가하니, 속히 개차(改差)하여야 합니다. 또 칠참 찰방(七站察訪)은 사대(事大)하는 일이 중하므로 문관(文官)으로 차임하여 보내는데, 지금의 찰방 이원성(李元成)은, 광주 목사(光州牧使)에서 건습병(蹇濕病) 때문에 갈리어 왔으니 칠참의 직임에 합당치 아니합니다. 모두 직을 가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체직하라.”
하였다. 성희안이 아뢰기를,
“신이 생각건대, 무사를 하루아침에 동반(東班)에 임용하면 물론(物論)이 부족하게 여기므로 국가에서 장수 기르는 일을 중히 여기니, 장래의 장수로 뽑힌 자는 그만이거니와, 나머지 무반(武班) 가운데서 쓸 만한 자를 많이 뽑아 일을 맡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종조(成宗朝)에서는 공사(公事)로써 시험하여 그 사람을 관찰하였는데, 이는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을 쓰는 방도는 모름지기 여러 방면으로 시험하여 그 재주를 보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정광필은 아뢰기를,
“무반이 출신(出身)하는 길은 매우 좁아, 내금위(內禁衛)나 겸사복(兼司僕)의 유에 쓸만한 자가 많으나 들어갈 만한 궐원(闕員)된 자리가 없으니,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부장(部將)은 취재(取才)와 무반(武班)을 겸차(兼差)하여 쓰나, 으레 무과 출신자를 차임한다면 무사가 거의 등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겸사복과 내금위가 모두 완의(完議)를 거쳐야 뽑히었는데, 이 법이 만들어진 뒤로 겸사복과 내금위는 사류(士類)가 아니면 될 수가 없으며, 서류(庶類)는 무재(武才)가 있더라도 발붙일 곳이 없어졌으니, 무재가 특출한 자라면 완의를 거치지 말고 차정(差定)하는 것이 어떠하겠습까? 겸사복은 단련된 재주를 시험하지 않으므로 천사(天使)의 족친(族親)도 이 직임에 있으니, 이들은 다른 직에 서용하고 내금위보다 우수한 자를 사복(司僕)에 차정하심이 가합니다.”
하며, 상이 정승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병조 판서의 말이 어떠한가?”
하니, 김수동이 아뢰기를,
“조종조에서는 내금위를 모두 정병(精兵)으로 채웠는데 내금위ㆍ겸사복 이하 모두 차등을 두었으니, 이는 한 가지 재주나 기예까지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저 재주란 어찌 사류만 능하고 잡류(雜類)라 해서 능하지 않겠습니까. 겸사복은 으레 서류를 쓰므로 강무(講武) 때엔 지극히 미천한 자까지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세조조(世祖朝)엔 겸사복과 내금위를 모두 합당한 자로 썼으며, 상(上)이 모두 그 이름을 알았는데 지금은 아무리 탁월한 재주가 있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중질 정도의 재주를 가진 자들은 지금 많으니 부장(副將)ㆍ군무(軍務)의 직임은 갑자기 갈 수 없다 하더라도, 궐원이 있을 때를 기다려 무사를 정선(精選)하여 차정한다면, 내금위와 겸사복은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들로 정선될 것입니다. 겸사복을 완의(完議)하는 것은 옛 제도가 아니니, 정광필의 말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부장을 무반으로 섞어 임용함은 지극히 마땅하다.”
하자, 김수동이 아뢰기를,
“성희안이 아뢴 것처럼, 공사(公事)로써 시험하면 그 사람됨을 다 알 수는 없더라도 그 사람의 일단(一端)은 볼 수 있습니다. 성묘조(成廟朝)에서는 조사(朝士)만 그렇게 했을 뿐 아니라 유생도 공사로써 시험하였는데, 다만 사람을 아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정원(政院)의 공사(公事)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성희안은 아뢰기를,
“이와 같이 하여도 능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신계(申啓)토록 함이 마땅합니다. 당(唐)나라 때의 신언 서판(身言書判)도 이 뜻입니다.”
하고, 승지 윤희평(尹希平)은 아뢰기를,
“오늘의 무사는, 보사(步射)하는 자는 많지만, 기사(騎射)하는 자는 전혀 없습니다. 무재(武才)란 모두 말 위에서 능해야 되는 것인데 보사만 익히니 되겠습니까? 성종께서 모화관(募華館) 바깥 문에 거둥하시어 타위(打圍)하실 적에, 무사들을 시켜 여우를 쏘게 하니, 김세적(金世勣)ㆍ이계동(李季仝) 등이 모두 즐겨서 하였으며, 이계동은 범을 쏘다가 말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습니다. 지금 습속(習俗)은 말타기를 익히지 않으니, 진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상재(馬上才)를 시험하도록 하소서. 또 장수는 전진(戰陣)을 익히지 않을 수 없는데, 《역대병요(歷代兵要)》는 대략 알지만 우리 나라의 전벌(戰伐)에 대한 일은 전혀 알지 못하니, 신의 생각으로는 《동국병감(東國兵鑑)》도 단 2책으로, 그 속에는 왜변(倭變)을 싣지 않았으니, 이제 이것을 보유(補遺)하여 반포해서 무사 강서(武士講書) 때에 모두 강하도록 함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원전】 14 집 543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군사-군정(軍政)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병참(兵站) / 군사-관방(關防)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역사-전사(前史) / 출판-서책(書冊) / 교통-육운(陸運) / 교통-수운(水運)


[주-D001] 완의(完議) : 
완의석(完議席)의 준말. 사헌부 관원이 둘러 앉아 배직(拜職)한 사람의 서경(署經)을 의논하는 모임. 배직 외에도 풍헌(風憲) 즉 기강에 관한 문제나 탄핵에도 이 모임을 열어 의논한다. 일명 원의석(圓議席)이라고도 한다.
[주-D002] 강무(講武) : 
지정한 곳에 장수와 군사 및 백성들을 모아 임금의 주재 아래 사냥하며 겸하여 무예를 익히던 행사.
[주-D003] 보사(步射) : 
보행하면서 활 쏘는 것.
[주-D004] 기사(騎射) :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 쏘는 것.
[주-D005] 타위(打圍) : 
수렵을 말한다.
[주-D006] 마상재(馬上才) : 
말을 타고 부리는 무예.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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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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