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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 이진이 상소한 전라도 신 관영의 지리적ㆍ군사적 단점에 대한 개선 방안 - 세종 9년

대호군 이진이 상소한 전라도 신 관영의 지리적ㆍ군사적 단점에 대한 개선 방안 - 세종 9년 정미(1427) 5월 11일(무술)


대호군(大護軍) 이진(李蓁)이 상서하기를,
“신 진(蓁)이 근일에 명령을 받잡고 강진(康津) 땅에 가서 읍성(邑城)을 쌓을 만한 곳을 보다가, 그 길에 전라도의 원수부(元帥府)가 전날의 도강현(道康縣)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조정에서 연해변을 위하여 불시의 걱정을 방비함이 지극하다 하겠습니다마는, 장흥(長興)ㆍ강진(康津)ㆍ해진(海珍) 세 고을은 바닷가이면서 내상(內廂)에 인접해 있어서 그 지세로는 믿음직하다 하겠으나, 그 지형으로 따져 보면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내상은 사방으로 통로가 좁고 험하여, 말을 타고도 짝지어 갈 수가 없고, 걸어서도 대오를 지어 갈 수가 없어서 출입하기가 곤란합니다. 혹시 왜구가 틈을 타서 갑자기 들어와 세 고을을 노략질한다면, 신이 걱정하기는 아군의 병력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나란히 대열을 지어 일제히 나갈 수가 없으니 어찌 임기응변으로 적군을 제어할 수 있겠습니까. 인접한 지역에서도 그러하온대, 더구나 서로 떨어져 있는 고을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성은이 널리 퍼져 있으매, 해구(海寇)들도 숨이 죽어 감히 침노하지 못하므로 변방이 걱정이 없게 되고, 백성들도 싸움을 모르게 되고 농업에 안정되어 노소가 모두 태평하게 지내니, 실로 우리 나라의 옛날에도 일찍이 없었던 태평 성대이옵니다. 그러하오나 태평할 때에는 난리를 생각하여야 되고 편안할 때는 위태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오니, 변방을 수비하는 방책을 어찌 하루라도 강구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진실로 일 없는 때를 당하여 미리 성상께서 유념하셔야 하겠기로, 삼가 좁은 소견을 가지고 신구 관영(新舊官營)에 대한 편불편을 조목으로 나누어 아뢰오니, 거룩하신 재량으로 굽어살피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신이 광주(光州)의 구영(舊營)을 보니, 형세의 훌륭함과 냇물의 유리함과 토지의 기름짐과 초목의 풍부함이 대장의 군영이 되기에 적당하고, 또한 남쪽 지방의 중앙으로서 통로들이 모두 평탄하여 실로 방어의 요충이 될 만하니, 이는 구영(舊營)의 편의한 첫째 조건이요, 군정(軍政)은 전마(戰馬)를 가꾸는 일이 선결 문제인데, 구영의 성밖은 사방이 편편하게 너르고, 큰 내가 둘러 흐르며, 호표(虎豹)의 작해나 도적의 걱정도 없어서 말을 기르기에 편리하기는 구영 같은 데가 없으니, 이는 그 편의한 둘째 조건이요, 구영은 성의 주변에 평원이 질펀한데 토양이 기름지고 지질이 비옥하여 비록 심한 가뭄을 만날지라도 물대기가 편리하여 흉년들 염려가 없으므로, 힘을 써서 경작하면 군량의 공급에도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는 구영의 편의한 세째 조건이오니, 이 세 가지는 특히 그 대강만 든 것이옵고, 그밖의 편리는 이루 다 들 수 없사온대, 이제 도강(道康)의 내상(內廂)은 그렇지 아니하와, 궁벽한 산골에 붙어서 높은 산들에 눌려 있어 산에 올라 내려다 보면 성안의 형편을 환하게 알게 되고 화살로 내리 쏠 수가 있으니, 이는 그 편의하지 못한 첫째 조건이요, 지금 내상의 서편이 해진(海珍)과 영암(靈巖)에 인접된 산길이 험하고 좁아서 겨우 말 한마리를 돌릴 수 있을 정도이고, 동으로는 장흥(長興)에 이르기까지 벼랑길이 되어서 말을 쌍으로 몰고 갈 수 없는 곳이 20여 리나 되옵고, 북에는 높은 산이 있어서 사람이나 말이 감히 올라갈 수가 없게 되어 있고, 남으로는 강진(康津)에 연했는데 길이 몹시 꼬불꼬불해서 만일 급한 경보가 있어서 군사를 일으키거나 군중을 동원하려면 창졸간에 적군에게 달려가기가 어려우니 그 편의 하지 못한 둘째 조건이요, 산언덕과 골짜기 사이에 사방으로 말을 먹여 기를 만한 평원이 없어 그로 인하여 전쟁에 쓸 말들이 마굿간에만 들어박히어 나날이 여위어 가게 되니, 이는 그 편의하지 못한 세째 조건이요, 원수(元帥)의 관아가 멀리 남쪽 변방에 치우쳐 있어서 강진(康津)이 제일 가깝고, 장흥(長興)이 다음이며, 해진(海珍)ㆍ영암(靈巖)이 그 다음이온대, 장흥을 거쳐서 동으로 광양(光陽)을 가든지 순천(順天)을 가든지 하려면 두어 밤 자야만 도착하게 되고, 영암을 거쳐서 서쪽으로 큰 강을 건너고 높은 재를 넘어서 고창(高敞)과 부안(扶安)에 이르려면 3, 4일 길이 되며, 북으로 진포(鎭浦)의 변방인 용안(龍安)ㆍ옥구(沃溝)에 이르려면 꼬박 5일이 걸려야만 도착하게 되오니, 만일 급한 일이 있으면 제대로 시일을 대어 방어할 수가 없을 것이 뻔합니다. 이는 그 편의하지 못한 네째 조건이요, 내상은 군무(軍務)가 번잡하고 분주한 곳인데, 서쪽 북쪽 먼 고을의 아전들이 양식을 싸들고 공문서를 가지고서 달음질로 4, 5일을 쫓아와야 하니 아전들의 노고뿐 아니라 군사 일이 이 때문에 완만하게 되고, 수령들이 이 때문에 문책을 당하게 되니, 이는 그 편의하지 못한 다섯째 조건이요, 지금 원수부의 영역 내에서 종군(從軍)하는 사람들이 많이는 구영(舊營) 근처의 사람들로서 당번으로 교대하는데 추위와 더위를 불구하고 비와 바람을 무릅쓰면서 험한 길처에 뒹굴고 진흙 바닥에 시달리어 사람과 말들의 고생이 진실로 말할 수 없으며, 또 신영(新營) 부근은 파발과 우편이 엉성하여 수륙 양면의 처치사와 절제사들이 변방 경계와 통신 연락이며, 군대 지휘와 마필 징발에 그 노고를 이기지 못함이 또한 딱하고 가엾습니다. 이것이 그 편의하지 못한 여섯째 조건이요, 바다로 온 왜구가 만일 속임 술책으로 진포(鎭浦) 등지에 형체를 나타내어 천천히 침범하기를 꾀하면서 머뭇머뭇하고 나오지 않다가, 우리 원수[摠戎]의 군대가 겨우 그들의 있는 곳에 이르게 될 무렵을 기다려서, 적병이 기마대로써 밤중에 빠른 배를 타고 갑자기 도강(道康)으로 들어오면, 신이 두려워하건대 원수[摠戎]는 미처 돌아올 새가 없고, 성을 지키던 고단(孤單)한 병졸들이 형세가 약하고 힘이 떨어져서 마침내 화를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니, 만일 그렇게 되면 성중에 있는 병기나 군량은 도적들의 차지가 되어버리어 후회 막급일 것이니, 이는 그 편의하지 못한 일곱째 조건입니다. 신구영(新舊營)의 편불편이 대개 이러하옵고, 또한 신이 근일에 명을 받잡고 역마(驛馬)로 달려서 겨우 여산(礪山) 길처에 접어들었더니,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경차관(敬差官)이 일부러 내려오는 것은 필시 원수부 군영에 관한 일인가 보다.’ 하고, 강진(康津)에 이르러서는 어리석은 병졸들도 모두 말하기를, ‘이 행차는 필시 군영 옮기는 일일 것이라,’ 하니, 그들이 구영(舊營)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오랠수록 더욱 간절함이 이러합니다. 다만 구영이 광주(光州) 지경에 있어서 광주에서는 군영을 제일 싫어한 끝에, 일찍이 감사에게 아뢰어 그 청사를 헐어서 그 재목과 기와를 이웃 고을과 나누어 쓰고, 오직 석성(石城)과 누각만은 온전하게 전날과 같이 있습니다. 만일 영강(永康)의 성 쌓는 공력을 옮겨서 청사[廨舍]를 옛날 터에다 짓는다면 힘이 덜 들고 성공하기가 빠를 것이옵니다. 신이 생각하옵건대 말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몰라서 말하지 못함은 지혜의 부족으로 돌릴 뿐이지마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충성치 못하온 것이옵기로 이에 변변치 못한 소견을 베풀어서 감히 성총(聖聰)을 번거롭게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특히 허락하시는 분부를 내리시어 원수부를 구영(舊營)에 복귀시킴으로써 군사의 기운을 돋우어 주고, 지방의 민정에 순응하여 도강(道康)에 있는 성으로는 강진(康津)의 진(鎭)을 만들고, 강진(康津)에 성 쌓는 힘으로 청사를 구영에다 지으면, 옛 고을의 좋은 점을 이용하고 성 쌓는 노역도 절약될 것이오며, 고쳐 지키는 방비를 엄중히 하면 미래의 걱정도 없어질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의 졸렬한 계책을 굽어 살피시어 신의 변방 수비하는 좁은 소견을 채택하신다면 군과 민에 다행이요, 국가에 다행이 되겠나이다.”
하였다.
【원전】 3 집 72 면
【분류】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관방(關防) / 정론(政論) / 외교(外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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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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