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을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판광주목사 우희열이 제언의 일을 상서하다 - 태종 18년

판광주목사 우희열이 제언의 일을 상서하다 - 태종 18년 무술(1418) 1월 13일(갑자)


판광주목사(判廣州牧事) 우희열(禹希烈)이 상서(上書)하였는데, 대략은 이러하였다.
“신이 그윽이 듣건대, 요(堯)임금과 탕(湯)임금의 세대에도 큰 물과 가뭄의 재앙을 면하지 못하였으나, 백성들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았던 것은 재앙에 대비하여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정(鄭)나라에서 경수(涇水)를 파서 백성들이 그 이익을 얻었고, 문옹(文翁)이 물 내려가는 구멍을 파서 사람들이 그 은혜를 생각하였으니, 역대에 수리(水利)를 일으켜 민생(民生)을 후하게 한 것이 사책(史冊)에 실려 있어 지금 모두 고증할 수 있습니다. 신이 어둡고 어리석은데도 성은(聖恩)을 잘못 입어 지위가 재상(宰相)에 이르렀으니 실로 분수에 넘칩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서 늙고 또 질병(疾病)에 걸려 비록 규곽(葵藿)의 정성이 있으나, 돌아보면 조그마한 도움도 없었습니다. 삼가 관견(管見)을 조목별로 뒤에 열거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상재(上裁)하여 시행하소서.
1. 신(臣)이 근래 전라도 김제군(金堤郡) 벽골제(碧骨堤)를 보니, 사방 둘레가 2식(息)이 넘는데 수문(水門)이 다섯이 있어 큰 내[大川]와 같아서 1만여 경(頃)을 관개(灌漑)할 수 있었습니다. 옛사람이 처음으로 제언(堤堰)을 쌓아서 수리(水利)를 일으켜, 그 공(功)이 심히 컸습니다. 갑오년(甲午年)에 수축(修築)한 이후 둑[堤] 아래 넓은 들에는 화곡(禾穀)이 무르익어 이를 바라보면 구름과 같습니다. 그러나, 몇 군데는 통(筒)을 잇대어 견실(堅實)하지 못하여, 전지 70여 경(頃)이 아직도 다 개간(開墾)되지 못하고 있으니 진실로 한스럽습니다. 원컨대, 일찍이 축조(築造)에 경험이 있는 사람인 전 지김제군사(知金堤郡事) 김방(金倣)을 파견하여 그 고을 수령(守令)과 함께 통(筒)을 잇댄 곳과 수구(水口)가 무너진 곳을 단단하게 쌓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1. 신이 고부(古阜)의 땅 눌제(訥堤)를 보니, 옛날에는 3대 수문(水門)을 설치하였는데, 그 동쪽 수문(水門)은 부령현(扶寧縣) 동쪽 방면으로 1식(息)여 리 흘러 들어가고, 가운데 수문은 부령현 서쪽 방면으로 흘러 들어가고, 서쪽 수문은 보안현(保安縣) 남쪽 방면으로 흘러 들어가서, 관개(灌漑)의 이익이 1만여 경(頃)이었습니다. 이로 본다면 이익은 많고 손해는 적은 것을 가히 알 수 있고, 또 도랑[溝洫]의 옛 터 를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습니다. 혹자(或者)가 이에 말하기를, ‘둑 안에 있는 전지는 수침(水浸)하여 사용하지 못하고 또 둑 언덕은 낮은데 전야(田野)는 높아서 비록 개간(開墾)하고자 하더라도 장차 쓸모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나, 그러나 비 온 뒤에 수침(水浸)의 해는 며칠에 지나지 않았고 즉시 아래로 흘러내려 가서 곡식에 손해된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 부안 병마사(扶安兵馬使) 한계흥(韓繼興)과 그 현(縣)에 사는 전 호군(護軍) 김당(金堂)과 이민(吏民) 등이 개축(改築)하기를 매우 바라니, 전 현감(縣監) 곽휴(郭休)를 보내어 고쳐 수축하여 권농(勸農)하도록 명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1. 벽골제(碧骨堤) 아래 진지(陳地)가 거의 6천여 결(結)이고, 눌제(訥堤) 아래 진지(陳地)가 1만여 결(結)인데, 다만 그곳의 거민(居民)을 가지고서는 능히 다 경작할 수 없습니다. 경상도는 인구가 조밀하고 땅이 협착하여 그 경작할 땅이 없으니, 혁거(革去)한 사사 노자(寺社奴子) 7,8백 명을 뽑아서 옮겨 살게 하고, 각 고을의 묵은 곡식과 소[牛隻] 2백여 마리를 무역하여 주어서 국농소(國農所)를 더 설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1. 눈이 녹은 물[雪水]은 오곡(五穀)의 정기(精氣)이니, 매년 9월에 얼음이 얼기 전에 보(洑)나 제언(堤堰)을 더 쌓아서 얼음이나 눈의 물을 저장하였다가, 다음해 이른 봄에 흡족하게 관개(灌漑)하소서. 민생(民生)을 후(厚)하게 하는 양책(良策)은 칠사(七事)의 조획(條畫)인데, 그 안에, 다만 ‘권과농상(勸課農桑)’ 이라고만 일컫기 때문에 수령(守令)들이 농사(農事)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가을ㆍ겨울철이 바뀌는 때에 마음을 써서 축조(築造)를 더하지 않다가 혹은 죄(罪)를 얻는 자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수령(守令)이 체대(遞代)할 때 해유 문자(解由文字) 안에 ‘어느 수령은 어느 해 어느 철에 옛 터에 축조를 더 한 것이 몇 군데이고, 새로운 터에 축조한 것이 몇 군데이고, 물을 저장한 것이 몇 척(尺)이고, 관개(灌漑)한 땅이 몇 결(結)이라.’는 것을 일일이 갖추어 써서 시행하여 감사(監司)게게 보고하고, 감사가 척간(擲奸)하여서 출척(黜陟)에 빙고하게 하소서.”
임금이 읽어 보고 박습(朴習)에게 물었다.
“벽골제(碧骨堤)는 경이 관찰사가 되었을 때 쌓은 것인데, 그 이익이 얼마쯤 되던가?”
박습이 대답하기를,
“둑 위에 있는 땅은 침몰된 것이 비록 많지만, 둑 아래에서는 이익이 거의 3배나 되었습니다. 근처의 백성들이 모두 금을 그어서 푯말을 세웠으나 아직도 다 개간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탄복하고,
“이처럼 넓은 땅을 여러 해 동안 개간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개간할 수 있었던 것도 백성들의 운(運)이었다.”
하였다.
박습이,
“신은 이러한 때를 당하여 지김제군사(知金堤郡事) 김방(金倣)을 차견(差遣)하여 그 역사를 감독시킨다면, 백성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그 일을 능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쓸 만한 사람입니다.”
하니, 임금이 묻기를,
“나이가 얼마인가?”
하였다.
박습이 대답하기를,
“중년의 사람입니다.”
하니, 임금이,
“어느 고을 사람인가?”
하매, 박습이 대답하기를,
“광주(光州) 사람입니다. 김제 군수(金堤郡守)가 되었을 때 관찰사 권진(權軫)이 작은 죄를 범하였다고 하여 파직(罷職)시켰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또 출신(出身)이 어떠한지를 물으니, 좌대언(左代言) 이명덕(李明德)이 대답하기를,
“일찍이 생원(生員)ㆍ진사(進士)가 되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내가 듣건대, 윤전(尹琠)의 아들 윤흥의(尹興義)도 가히 쓸 만한 사람이라 한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가 뒤에 서용(敍用)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고, 이어서 이명덕 등에게 하교(下敎)하기를,
“이은(李殷)은 노인(老人)이지만 공사(公事)를 꺼리지 않으니, 경상도에 이문(移文)하여 노인으로 하여금 올라오지 말게 하고, 도내의 제언(堤堰)을 순찰(巡察)하게 하라. 또 경기에 이문(移文)하여 우희열(禹希烈)로 하여금 경기의 제언(堤堰)을 순찰(巡察)하게 하라.”
하고, 또 명하였다.
“각도의 수령(守令)이 양반(兩班)과 인리(人吏)의 말을 듣고 제언(堤堰)을 파괴하여 고기를 잡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기강이 없고 잔열(殘劣)한 사람들이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진실로 이러한 수령이 있으면 조율(照律)하여 논죄하라.”
【원전】 2 집 200 면
【분류】 농업-수리(水利) / 농업-개간(開墾) / 정론(政論)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주-D001] 탕(湯) : 
은(殷)나라의 시조.
[주-D002] 정(鄭) : 
중국 춘추(春秋)시대의 나라의 하나.
[주-D003] 경수(涇水) :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부(西安府) 경양현(涇陽縣) 남쪽 7리에 있는 강.
[주-D004] 문옹(文翁) : 
중국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촉(蜀)의 군수(郡守).
[주-D005] 규곽(葵藿) : 
해바라기처럼 임금을 바라보는 것.
[주-D006] 통(筒) : 
물을 잇대는 수로.
[주-D007] 국농소(國農所) : 
나라에서 경영하던 농장(農場). 노예(奴隷)를 집단으로 사역(使役)시키고 곡식 종자(種子)와 소[牛]를 지급하여 경작시켰음.
[주-D008] 칠사(七事) : 
수령이 지켜야 할 일곱 가지 조목. 즉 농상성(農桑盛)ㆍ호구증(戶口增)ㆍ학교흥(學校興)ㆍ군정수(軍政修)ㆍ부역균(賦役均)ㆍ사송간(詞訟簡)ㆍ간활식(姦猾息).
[주-D009] 권과농상(勸課農桑) : 
농업과 잠상(蠶桑)을 권하여 일으킴.
[주-D010] 해유 문자(解由文字) : 
관원들이 전직(轉職)할 때 재직중(在職中)의 회계ㆍ물품 출납에 대한 책임을 해제 받던 증명서. 인수 인계가 끝나고 호조나 병조에 보고하여, 이상이 없으면 이조에 통지하여 해유 문자를 발급하였음.
[주-D011] 척간(擲奸) : 
부정이 있나 없나를 캐어 살핌.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2003) 광주 향토사 연구 (사)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
광주광역시 동구청(2021) 동구의 인물2 광주광역시 동구청
광주시남구역사문화인물간행위원회(2015) 역사를 배우며 문화에 노닐다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민속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21) 양림 인물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동구문화원(2014) 광주광역시 동구 마을문화총서 Ⅰ 광주동구문화원
광주문화관광탐험대(2011~16) 문화관광탐험대의 광주견문록Ⅰ~Ⅵ 누리집(2023.2
광주문화원연합회(2004) 광주의 다리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원연합회(2020) 광주학 문헌과 현장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재단(2021) 근현대 광주 사람들 광주문화재단
광주북구문화원(2004) 북구의 문화유산 광주북구문화원
광주서구문화원(2014) 서구 마을이야기 광주서구문화원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옛 지도로 본 광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04) 국역 光州邑誌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3) 영산강의 나루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8) 경양방죽과 태봉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0) 1896광주여행기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1) 광주천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김경수(2005) 광주의 땅 이야기 향지사
김대현.정인서(2018)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김정호(2014) 광주산책(상,하) 광주문화재단
김정호(2017) 100년 전 광주 향토지명 광주문화원연합회
김학휘(2013) 황룡강, 어등의맥 16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4) 광산의 노거수, 어등의맥 17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5) 광산나들이, 어등의맥 18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6) 설화와 전설, 어등골문화 21호. 광산문화원
김학휘(2018) 광산인물사, 어등의맥 21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9) 마을사이야기, 어등골문화. 광산문화원
남성숙(2017) 전라도 천년의 얼굴 광주매일신문
노성태(2016) 광주의 기억을 걷다 도서출판 살림터
노성테.신봉수(2014) 사진과 인물로 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문화원연합회
박규상(2009) 광주연극사 문학들
박선홍(2015) 광주 1백년 광주문화재단
정인서(2016) 산 좋고 물 맑으니-광주의 정자 광주문화원연합회
정인서 외(2015) 광주의 옛길과 새길 시민의 소리
정인서(2011)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의 표정 대동문화재단
정인서(2011) 광주문화재이야기 대동문화재단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2016) 광주 역사문화 자원 100(上,下)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천득염(2006) 광주건축100년 전남대학교출판부
한국학호남진흥원(2022) 광주향약 1,2,3. 한국학호남진흥원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