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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사민속박물관, 일상의 소품 전시회 ‘안경 이야기’
12월말까지, 안경·화보 등 유물 전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3일부터 12월31일까지 박물관 1층 로비에서 현대인의 일상소품인 안경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은 전시회 ‘안경 이야기’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와 한말의 안경, 수정을 깎아 만든 안경알, 안경다리를 두 번 접을 수 있는 안경인 ‘학슬’, 상어가죽으로 감싼 안경집 ▲조선풍속사진첩, 파리만국박람회 화보, 안경을 쓴 채 외국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노인을 그린 화보 등 안경 변천사와 일화 등이 소개된다. 이들 전시물은 최근 시민들이 기증하거나 올해 박물관이 자체 구입한 유물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안경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580년대 나주목사를 지낸 김성일이 사용했다는 안경도 전해지고 있다. 처음부터 안경알을 유리로 만들지는 않았다. 18세기 전라도 사람 황윤석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엔 수정을 깎아 안경알을 만들었다.
당시 안경은 유리가 아닌 수정으로 만들다보니 초기 안경은 돋보기 기능이 떨어져 기능상 요즘의 선글라스에 가까웠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그 때문인지 조선시대에는 안경을 바람과 햇빛을 막는다는 뜻으로 풍안(風眼)이라 불렀다.
‘안경 예절’이란 것도 있었다. 연장자나 지체 높은 사람 앞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간혹 이런 예절을 어긴 사람이 있었다. 헌종 때 이조판서 조병구는 안경을 쓴 채 궁궐에 들어갔다. 그런 모습을 본 헌종 임금은 그에게 불호령을 내렸고 조병구는 그 뒤 심신쇠약으로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정조 임금도 평소에는 안경을 쓰다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반드시 안경을 벗곤 했다.
한말 이후 안경 사용인구가 조금씩 늘었다. 유리 안경알도 이때부터 등장했다. 하지만 초기 유리알 안경은 비쌌다. 미국 선교사 제임스 게일에 의하면, 안경 한 개 값이 15달러였다. 쌀 몇 섬 값에 해당하는 고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값싼 안경이 늘면서 안경 착용도 증가했다.
1920년대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는 안경 쓴 한국인 노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예스러운 복장이나 길게 기른 수염을 빼면 요즘 한국인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일상의 소품으로 안경이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김오성 박물관장은 “박물관은 대형 기획전시 외에도 생활소품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은 전시를 열어 시민과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친밀감을 높이는 사업을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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