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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20건)

만귀정시사창립기념비
일제강점기에 결성된 시회, 만귀정시사 당시 만귀정에서는 멋스러움을 한시로 읊으며 세상을 논하는 시회가 결성되었다. 1939년 송광세(宋光世)가 지은 <만귀정시사창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문의 내용을 통해 1939년경 '만귀정시사(晩歸亭詩社)'라는 시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귀정은 현재 광주광역시
이회춘-수리계장이회춘 동계이사 장창섭 공적기적비
광주시 서구 서창동 동하마을 만귀정 입구 도로변에 수리시설인 백마양수장 건설에 따른 공덕비이다. 1939년(소화 14년)에 동하수리계원 일동으로 세웠다.2019. 1. 8. 수정
유현장공재철공덕비
이 유현장공재철공덕비 惟玄張公在鐵功德碑는 서구 서창동 동하마을 만귀정 입구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백마수리계 계원 대표 동하 장민환, 마산 정해용, 세동 김종완 이름으로 세워졌다. 백마양수장을 개인경영으로부터 몽리인자영으로 만든 공로를 기려 1968년에 세운 공덕비이다.비 뒷면에는 글이 있다.당신의
전읍장묵암장안섭기적비
광주시 서구 세하동 동하마을 만귀정 입구 도로변이 전읍장묵암장안섭기적비前邑長默菴長安燮紀跡碑는 송정읍장으로 있으면서 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록해 1954년(단기 4287년)에 세웠다.대표적인 일화는 단돈 당시 70원으로 광산구 청사 부지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옛 광산구 청사는 일제 강점기 때 동양척식주식회사
장창우- 만귀팔경 (만귀8경)
瑞石明月 무등산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龍江漁火 황룡강에는 어부들의 불빛이 있네.馬山淸風 백마산에는 맑은 바람 산들거리며樂浦農船 낙포 농장에는 농사를 위한 배가 오가네 漁燈暮雲 어부들의 등불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松汀夜雪 송정에는 흰눈이 밤을 밝히며錦城落照 나주 금성산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野外長江
청류교
한 걸음이면 뛰어넘을 앙증맞은 다리가 있다. 서구 세하동 동하마을 입구에 있는 만귀정 옆길이다. 그냥 지나치면 잘 보이지 않는 다리이다. 청류교(淸流橋)이다. 언제쯤 세웠을까 다른 쪽 교각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무인앙춘 묵암가설(戊寅仰春 黙菴架設)’이라는 글씨가 휘갈겨 있다. 만귀정을 중건한 묵암 장안섭이 1938
세하-만귀정(晚歸亭)
만귀-정(晚歸亭) 【정】 동하 앞에 있는 정자. 전 광산읍장 장안섭(張安燮) 등이 늘그막에 시를 읊으며 놀았다 함.
세하-동하(洞荷)
세동 동북쪽에 있는 큰 마을동하마을은 조선 초기에 청주한씨가 입촌하여 생성된 마을로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연하꽃과 같고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서 창관내 서부 중앙부에 위치하여 마을 뒤에 백마산과 옥녀봉이 솟아있고 마을 앞에는 송정평야의 넓은 들이 펼쳐져 그들가운데 극락강이 흐르고
용이 된 잉어할머니
이 이야기는 서구 세하동 동하洞荷마을 앞 조용한 만귀정晩歸亭 연못 속에서 벌어진 일을 그리고 있어요. 물고기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의를 통해 해결해가는 과정이 드러나지요. 인간들에 의해 연못의 평화가 깨지고 있어 물고기들의 논의가 열린 것입니다. 물고기와 인간 사이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때 묻
읍궁암(눈물바위)의 푸른 이끼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는 읍궁암泣弓巖이 있어요. 엄이재掩耳齎 뒤편에 있는 푸른 이끼가 낀 바위를 말합니다. 이 엄이재는 한말 유학자이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34) 선생이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봉황산鳳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
덕풍나루
덕풍나루의 존재는 오횡묵의 『지도군총쇄록』에 등장한다. 덕풍진德豊津으로 일컫는 이곳은 1896년 전남관찰부에 업무 보고를 위해 광주를 방문하던 당시 지도군수 오횡묵이 지금의 나주시 노안면과 광주시 광산구 동곡동을 지나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서창마을 쪽으로 향했다고 한다.『세종실록』에는 황룡강
눌재로
눌재로는 남구 압촌동에서 서구 서창동과 벽진동에 걸쳐 있는 도로다. 눌재로는 남구 압촌동 지석제 부근의 회재로와 맞닿는 부근에서 시작하여, 벽진동의 벽진고가교까지 6,224m의 도로로, ‘우부리 격살 사건’, ‘신비복위소’ 등으로 의로움을 몸소 실천한 눌재 박상(1474~1530)을 기린 도로다. 눌재로를 통해 서구에서 선정
권안제
서구 세하동백마산에서 만귀정으로 가는 길에 왼쪽에는 백마제, 오른쪽에는 권안제가 있다. 권안제는 노랑꽃창포 등 원예식물 식재로 습지의 훼손뿐만 아니라 원예식물의 고사체로 인하여 수질오염이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장재
서구 세하동모장재는 지도를 펴놓고 보면 만귀정과 백마산, 서광주역의 한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다. 모장재는 순재와 마찬가지로 백마산 일대에 있는 고개다. 송학산과 개금산 사이에 있는 백마산은 현재 광주에 속하지만 옛날에는 광산군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영산강 너머 평야지대로 연결되던 통로 쯤에 해당된다. 권안제
마재
서구 세하동 ‘마재’하면 금호동과 풍암동 경계에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공간으로는 시청자미디어센터와 119풍암안전센터가 자리한 곳 일대를 마재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재마을은 광주시 서구 서창동 관할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있는 백마산의 말발굽자리에 소재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주광
세하동 동하당산제
동하마을 뒤에는 백마산, 각시봉 등의 산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앞쪽(서쪽)에는 극락강 유역에 넓은 평야가 있어 대부분 논농사를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시설원예 농가가 늘었다. 조선 초에 청주한씨가 입촌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마을 형국이 연(하)꽃에 비유된다. 당산은 마을 앞에 큰샘과 마을 곳곳에
만귀정/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1984. 2. 29.)
서구 동하길 10(세하동)만귀정晩歸亭은 흥성 장씨의 선조인 효우당孝友堂 장창우張昌雨(1704∼1774)가 학문을 가르쳤던 옛 터에 후손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일제강점기 정자이다. 원래 건물은 소실됐으나 1934년에 다시 중건됐고, 1945년에 고쳐지었다.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만귀정 습향각 묵암정사
서구 동하길 10 (세하동)서구 세하동, 마을 뒤에 백마산과 옥녀봉이 솟아있고 마을 앞에는 서창평야의 넓은 들고 그 가운데로 극락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넓은 서창평야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마을 입구에 자리한 옛 정원형 정자가 있다. 마을 입구에 큰 연못이 있고 그 위로 다리를 사이에 두고 3개의 정자가 나란
서구의 동(주민센터) 유래와 연혁
광천동 광천동의 유래와 연혁광천동은 일제 때의 광천정光川町을 1947년부터 고쳐 부른 이름이다. 엣날에는 광주천가에 새로 방죽을 쌓았다고 해서 새방천 혹은 신방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후기 기록인 『여지도서』 및 『호구총수』에 따르면, 현 광천동 지역은 광주목 군분면軍盆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광주를 이끌어온 광주의 중심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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